속 터지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 속 터놓은 대화 이끈 '착한 예능'
흔히 자식은 업(業·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결과)이라고들 한다. ‘세 살 이전에 평생 효도 다 하는 게 자식’이라는 말도 있다. 부모 자식 사이의 실상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을 재료로 한다. 일반인 출연자가 사연을 보내면 제작진이 사전 취재하고 출연을 결정한다.

예능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출연하는 일반인의 각오는 가볍지 않다. 몰래 카메라가 기본이어서 가족의 사생활 노출이 불가피하다. 가수가 되겠다며 학업을 등지는 딸과 갈등 중인 아버지는 “애 마음 바꿔보자고 용기를 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당사자는 기억조차 못하는 폭력에 대해 사춘기 딸이 녹화 중 문제를 제기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진심으로 사과하며 “우리 집이 문제 가정은 아니다”고 거듭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편함이 따르는데도 왜 많은 일반인이 ‘동상이몽’에 출연할까. 결코 평범한 사례가 아닌데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사이에 ‘동상이몽’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지난달 29일 방송된 ‘청담동 가위손’ 편에 나온 어머니는 재능 없는 고등학생 아들이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게 답답하다며 ‘동상이몽’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찾아가 보니 뚜렷한 갈등 요인이 드러나지 않아 방송 출연을 보류했다. 3개월 뒤 어머니는 다시 ‘동상이몽’ 제작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사이 비행청소년으로 변한 아들과 직면해야 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진행자와 패널로 유명 연예인이 참여해 감정이입을 하고, 부모와 자식 편에 서서 갑론을박 토론하며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아들의 꿈을 타박해온 어머니와 겉멋에 치중하는 아들은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온 유명인들과 접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되돌아본다.

지난 14일 방송된 ‘개그맨’ 편도 그랬다. 개그맨이 되겠다며 과도한 퍼포먼스를 일삼는 아들과 “정신 나간 짓 한다”며 호통치는 아버지가 출연했다. 두 부자는 일곱 명의 유명 개그맨으로부터 “개그는 웃기는 거지, 우스운 게 아니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들었다. 방송이기에 가능한 만남과 조언이다. ‘동상이몽’에 출연하는 청소년들은 꿈에 그리던 롤모델을 만나 변하기 시작한다. 많은 부모가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동상이몽’에 출연하려는 이유다.

이런 시도는 일반인의 홍보 수단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지난 7일 방송된 ‘BJ 우앙’ 편은 방송 직후 27세 미녀 BJ(인터넷 1인 방송 진행자) 우앙에 대한 부정적인 뒷이야기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들끓게 했다. 프로그램 구성도 매운 음식 ‘먹방’에 집중해 ‘동상이몽’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바쁜 엄마로 인해 성장기를 나 홀로 집에서 보낸 27세 ‘성인 청소년’ 우앙의 사연은 심금을 울렸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청소년기는 진보를 위한 퇴행기”라고 정의한다. 건강한 성인이 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라는 의미다. ‘동상이몽’은 이런 측면에서 용기 있는 부모와 자녀에 의한 공개 예방접종이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