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서 밀면 새는 날아오른다"…위험 처해봐야 숨은 힘 드러나
어느 왕이 새끼 매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매를 길들이기 시작했는데, 한 마리는 날지 못했다. 매는 궁에 들어온 날부터 나뭇가지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의사도 불렀지만, 매를 움직이지 못하고 돌아갔다. 나라에 방을 붙여 해답을 구하자 한 농부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했다. 왕이 물었다. “네가 어떻게 매를 날게 했느냐?” 머리를 조아린 농부는 답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앉던 나뭇가지를 잘라 버렸을 뿐입니다. 매는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이 옛이야기는 형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손자병법과 맥을 같이한다. 군사들이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손자는 “목석의 성질은 편안한 곳에 두면 가만히 있고, 위태로운 곳에 두면 움직인다. 모가 나게 하면 멈추고, 둥글게 만들면 구른다. 그러므로 군사가 잘 싸우게 하는 형세란 마치 둥근 돌을 천 길이나 되는 산 위에서 굴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태로운 곳에 놓아두면 숨은 가능성이 드러난다는 가르침은 사회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최근 지인에게서 캐나다를 여행하던 중 원주민 행사에 초대받았던 경험을 들었다. 유서 깊은 마을 행사라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그는, 건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원주민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고 했다. 그 날은 청소년들을 마을 밖 먼 곳에 떨구어 놓고 스스로 길을 찾아 돌아오게 하는 성인식을 치르는 날이었다. 어느 부모도 길을 헤매고 있을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도록 마을 안의 모든 어른을 한 건물에 가두어 두는 것이 마을 전통이라고 했다. 외부에서 온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지인의 경험을 들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걱정했다. 한국 사회는 다음 세대를 강인하게 키우지 않는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헬리콥터 맘이라 불리는 학부모들은 자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한다. 학원을 정하고 교재를 사고 학원으로 데려가는 일 모두 부모가 직접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자녀 경험과 고민을 제한한 부모는 제 방 하나 정리하지 못하는 대학생을 걱정한다. 그러다가도 자녀가 아프다고 하면 대신해서 회사에 전화해서 출근을 못 하니 양해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고용을 유도한다는 주장은 세대 간의 상생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가 생기고 있을까.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수백조원에 이른다고 하지만, 해마다 고용을 줄여가는 추세다.

우리는 ‘벼랑에서 밀면 새는 날기 시작한다’는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계속해서 힘없는 병아리들만 벼랑에서 밀고 있다. 반면 이 사회가 벼랑에서 밀어내야 하는 독수리는 큰 가지 위에 자리 잡고 앉아 꿈쩍도 않는다. 대규모 기업그룹이 계열사 간 일감 밀어주기로 매출을 확보하고, 이익금 일부를 총수 가족 승계를 위한 운영자금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면 병아리들은 독수리를 존경하지 않는다. 급기야 한숨과 낙담 끝에, 독수리가 앉아있던 가지가 아니라 나무 자체를 송두리째 찍어버릴 벌목꾼을 꿈꾸기 시작한다.

세계 최대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의 막강 대선후보 힐러리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라. 그는 “재벌은행을 해체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해서 부를 중산층과 빈곤층에 재분배하자"고 단언한다. 지금 미국은 병아리들이 선거자금을 모아 독수리가 앉아있는 나무를 찍어낼 벌목꾼을 대선후보로 추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멋진 날갯짓을 기대하면서 독수리를 벼랑에서 밀어내자. 그리고 병아리들은 밀어내더라도 벼랑이 아닌 언덕에서 밀자. 그리고 믿어보자, 하늘은 모든 새가 함께 날아도 될 만큼 넓다고.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