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공노조…"임금피크제 도장 찍을테니 승진 시켜달라"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면서 공공기관이 노동조합에 휘둘리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기관 노조가 정부의 ‘연내 도입’ 지시로 기관장들이 시간에 쫓긴다는 약점을 악용해 “임금피크제에 도장을 찍어줄 테니 별도의 임금 인상과 승진, 보직 확대 등을 보장하라”고 무리한 ‘뒷거래’(이면계약)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4일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은 전체 316곳 중 100곳이다. 지난달 5일 11곳에서 한 달 만에 아홉 배로 늘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선착순 가점제’를 도입해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도입 기관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 중에는 노조와 이면 합의한 공공기관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7일 관계부처협의회를 열어 연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기관은 내년 임금 인상률을 50% 깎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정부가 공기업의 임금피크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공기업들이 노조와의 합의가 어렵기 때문에 이면계약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발전기업인 A기관은 7월 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인건비 여유분이 생기면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만 향후 다른 비용을 인건비로 전용해 깎인 월급의 일정 부분을 메워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내년부터 정년 60세 도입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 청년 일자리를 늘리자’는 임금피크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 기관 관계자는 “청년 채용을 늘리면 인건비가 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해당 조항은 노사 합의 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로 넣었지만 상징적인 의미”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합의된 임금 감액률을 변경하거나 인건비가 설령 남아도 돌려주는 것은 제도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최근 노사협의를 진행 중인 B기관 기관장은 임금피크제 도입 조건으로 노조가 승진과 고위직급 확대를 요구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기관장은 “노조가 임금피크제 협상을 계기로 경영권을 침해하는 요구를 해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C기관 노조는 임금피크제 도입의 대가로 장기근속 수당과 직원 연수 기회 확대를 요구했다가 노조 내부 논란에 최근 임금피크제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기관 내 주요 보직에 대한 내부 직원 몫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있다. 전국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D기관 기관장은 임금피크제 협상 중 노조로부터 지역본부장직에 대한 내부 발령 확대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이 기관장은 “외부 공모 절차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임금피크제 도입 협상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한 공공기관장은 “정부에서 시한을 정해놓고 워낙 강하게 압박하니 기관장 입장에서는 노조와의 협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이러다 공기업 방만경영 혁신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김주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