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식 "인생 후반전…기업 경험 살려 '명품 NGO' 만들 것"
“글로벌 회사 경영 경험을 살려 ‘명품 NGO’를 만들겠습니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한국오라클 대표 등을 지내고 비정부기구(NGO)로 자리를 옮긴 유원식 제6대 기아대책 회장(사진)의 말이다. 기아대책은 1989년 윤남중 새순교회 목사와 고(故) 최태섭 한국유리 회장이 세운 기독교 계열 봉사단체다. 국내에서 자립한 해외 원조 NGO로는 처음으로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보다 앞서 설립됐다. 유 회장은 “상징성이 큰 NGO인 기아대책은 후원자와 수혜자를 이어주는 통로로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사업비 누수 등 낭비 요인을 없애고 관리 시스템을 최적화해 ‘떡과 복음’이라는 설립 초심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유 회장은 HP(휴렛팩커드)사업부에서 일하다 두 회사의 합작법인(삼성HP)으로 옮겨 2002년까지 일했다. 이후 한국썬 대표를 6년4개월, 한국오라클 대표를 5년8개월 지냈다. 2008년 12월 오라클 대표로 옮긴 지 몇 개월이 안 돼 썬이 오라클에 인수됨에 따라 두 회사의 합병 법인을 이끌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고 싶어 오라클에 사표를 냈다.

“정보기술(IT)업계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인생 2막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려면 더 이상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드헌팅 업체의 제의를 받고 지난해 11월 기아대책 회장 모집 ‘최초 공채’에 지원해 올 2월 말 낙점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 회장은 사실 봉사활동 이력이 새롭지 않다.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메이크어위시재단 이사 등을 지낸 바 있다.

유 회장은 “남을 돕겠다는 예쁜 마음을 가진 분들과 함께 일하게 돼 기쁘다”며 조직 혁신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어발로 확장할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해외 구호사업에 제일 강점이 있으니 다른 부분은 더 잘하는 곳에 넘기고… 기아대책 운영도 하나의 경영이니까, 간사(직원)들 역량을 강화해 진정한 글로벌 마인드를 갖게 하려 합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60여개국에서 102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선교사 560여명과 연계해 학교 설립, 인프라 구축 등 봉사활동을 프로젝트별로 하고 있다. 그는 사업·모금·관리 등 부서별로 고유의 평가체계를 만들고 권한을 확실히 위임하되 책임도 묻는 시스템을 고안 중이라고 했다.

유 회장은 회사가 성장하는 데는 ‘직원들 사기 진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는 ‘일 터치’가 아니라 ‘사람 터치’를 해야 합니다. CEO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해야지 직원들을 피곤하게 하면 안 돼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도 강조했다. “오라클에 부임할 당시 축하 난이 100여개 들어왔는데 직원에게 개당 1만원씩 받고 나눠준 뒤 이 돈을 메이크어위시에 기부했습니다. 이게 바로 CSR이란 걸 보여주려고요.”

한국 IT 산업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가야 할 길이 하드웨어, 인프라성 소프트웨어(OS, DB 등)가 아닌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그런데 정부 쪽에서는 이를 아는 분이 많지 않고 정치논리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니 국가경쟁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창조경제도 너무 불분명해요. 미국의 슈퍼파워는 소프트웨어에서 나옵니다. 국가 인프라가 제대로 변신해야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이 점프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