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한 번이라도 놓치면 아예 힘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17조1256억원과 영업이익 5조1095억원을 기록,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박 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엔 직원들에게 “목전에 고래를 마주한 고래잡이같이 한 번 작살을 잘못 던지면 우리 배가 난파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박 사장이 조직에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주력 사업인 D램 시장의 급변동,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기술 선점 등 올해 시장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하루하루가 전쟁…시장 흐름 한번 놓치면 끝장"
○달라진 반도체 시장

지난해 SK하이닉스는 PC용 D램 시장에서 적잖은 이익을 봤다. 갑작스러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XP 운영체제(OS) 지원 종료에 따라 PC 교체 수요가 늘어 PC용 D램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PC 수요가 다시 크게 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D램 시장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D램 시장 성장률(매출 기준)은 지난해 33.2%에서 올해 8.6%로 줄고 2016년부터는 오히려 감소할 전망이다. D램은 SK하이닉스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유회준 KAIST 전자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메모리사업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올해는 다소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며 “사업 다각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투자는 ‘흔들’…경쟁사는 ‘맹공’

SK하이닉스가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선 매출의 20% 정도인 낸드플래시 비중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낸드플래시를 만드는 청주공장의 가동률은 이미 90%를 넘어 사실상 완전 가동 수준이다. 증설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SK하이닉스는 올해 추가 라인 증설 없이 효율화 작업만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지만, 수조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최태원 SK 회장이 부재 중인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공격도 매섭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20나노 D램을 양산하고 있는 반면 SK하이닉스는 25나노대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업체는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생산성이 높아져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 양산하고 있는 3차원 낸드를 SK하이닉스는 올해 하반기에나 만들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이를 따라잡기 위해 5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사상 최대 투자 규모다. 하지만 업계 1위인 삼성전자의 올해 투자계획(약 15조원)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려면 더 과감한 후속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은/남윤선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