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에서 나이와 디자인에 따른 경계는 사라졌습니다. 여성복에서나 볼 수 있던 과감한 무늬와 동양적인 요소들이 이제 남성복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손형오 코오롱 FnC 커스텀멜로우 디자인실장)

올가을 남성복에 ‘하이브리드’ 바람이 거세다. 소재, 디자인, 코디법 등에서 정통 신사복의 틀을 벗어난 ‘영역 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주요 남성복 브랜드의 올 가을·겨울(F/W) 신상품을 보면 캐주얼이나 아웃도어 의류에 쓰던 낯선 소재들이 슈트, 재킷, 셔츠 등에 과감히 도입됐다. 스포츠웨어에 가까울 만큼 편안하고 활동적인 남성복이 많아진 점도 눈에 띈다.

빨질레리
빨질레리
저지 소재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저지는 가볍고 잘 늘어나는 면 직물로, 원래 운동복이나 여성복에 많이 쓰였지만 최근 남성 점퍼와 바지에도 사용되고 있다. 빨질레리가 내놓은 체크 무늬의 ‘레가토 재킷’(60만~100만원대)은 언뜻 보면 울 소재 같지만 실제로는 저지 원단을 썼다. 오래 입어도 착용감이 좋고 가볍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아웃도어와 같은 방수·방풍·보온 기능을 내세운 남성복도 늘었다. 갤럭시의 ‘리버서블 코트’(150만~200만원대)는 한쪽 면은 보온성이 뛰어난 방모 소재로, 한쪽 면은 땀을 잘 배출하는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 양쪽으로 뒤집어 입을 수 있다. 시리즈의 ‘스퀘어 퀼팅 코튼 재킷’(39만9000원)은 3M 신슐레이트라는 이름의 충전재를 집어넣어 환절기 보온 기능을 강조했다.

랑방스포츠
랑방스포츠
면이나 데님(청바지 천)으로 재킷을 만드는가 하면 질감이 투박한 스웨이드나 가죽 소재를 실험적으로 가공한 남성복도 나왔다. 서너 장씩 들어가던 어깨 패드를 한 장으로 줄여 ‘힘을 뺀’ 재킷도 다양하게 출시됐다. 이지영 제일모직 빨질레리 디자인 책임은 “이번 시즌에는 부드럽지만 차별화된 외관에 가볍고 편안함을 주는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의 다양화는 정통 슈트 대신 캐주얼이 인기를 끄는 남성복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기존 비즈니스 캐주얼에 활동적인 스포츠웨어와 길거리 패션을 가미한 이른바 ‘스마트 시티 웨어’가 주목받고 있다. 정통 정장과 비즈니스 캐주얼을 따로 구분짓지 않고, 여러 의류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실용성을 강화하려는 소비자 수요에 맞춘 것이란 설명이다. 이번 가을 정식 론칭하는 랑방스포츠(외투 60만~110만원대)는 도시적인 비즈니스 정장과 고급 아웃도어 의류를 혼합한 독특한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패션 전문가들은 코디법에 대해 “정통 정장과 캐주얼을 따로 구분해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매치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슈트 상의를 재킷으로 활용해 청바지나 면바지와 맞춰 입거나, 슈트 위에 사파리 재킷이나 바람막이 재킷을 걸치는 등 과감한 레이어드 룩(겹쳐 입기)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손형오 실장은 “지난해까지 인기를 끌었던 두꺼운 패딩이나 다운 점퍼 대신 깔끔한 정장 슈트에 캐주얼한 외투나 니트, 터틀넥 등을 겹쳐 입거나 파격적인 무늬가 들어간 옷으로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