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한남대는 지난해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철학과와 독문과를 폐지했다. 현재 전국 대학에서 독일어 전공으로 뽑는 신입생 규모는 작년 기준 1514명. 독일 관련 사업이나 통·번역에 필요한 인력에 비해 대학 독일어 전공자가 많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국내 대학이 과거 학제를 고집하고 있어 시대의 변화와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학 인문계 넘치고, 의약계 태부족"
○인력수급 고려 않는 정원 감축

교육부는 다음달 대학구조조정과 관련한 평가기준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24일 밝혔다. 당초 지난달 발표키로 했으나 대학가 반발로 몇 차례 늦춰졌다.

평가기준도 논란이지만 대학 정원 감축이 국가의 장기적 인력수급 전망과 연계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취업률 등 현재 지표만으로 정원을 조정하느라 미래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기업이 원하지 않는 인문계, 자연계 등 순수학문을 전공한 학생들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점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발표된 국가인적자원위원회 ‘2011~2020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이 기간 필요한 인문계 전공자는 37만여명으로 전체(416만여명)의 8.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3학년도 입학정원 34만980명 가운데 인문계열은 4만4817명으로 13.1%를 차지하고 있다. 인력수급 전망을 고려하면 인력비중이 4.2%포인트 남아돈다는 의미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대학 인문계열 입학자의 비중은 1985년 16.9%, 1993년 15.1%, 2003년 14.8% 등으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의약계열 입학자 비중은 1985년 3.7%에서 지난해 6.3%까지 높아졌지만 장기인력수급전망(10.2%)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계열별 중장기 인력수급과 현재 대학정원 비율을 감안할 때 인문·교육·자연계열은 넘쳐나고 의약·사회계열은 모자란 것으로 분석된다. 헬스케어 등 의료산업과 상담지도사, 청소년 지도사 등 사회복지서비스분야 등에서 앞으로 인력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대학도 특성화 나서야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은 어떤 학과 정원을 줄이고 어떤 학과 규모를 늘릴지에 대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하고 있다. 최은희 교육부 대학정책과장은 “장기인력수급 전망 관련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면서 학과구조조정 방향을 권고할 수 있지만 정부가 어디를 줄이고 늘릴지 일률적으로 결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물론 학문의 기본이 되는 인문학이나 과학의 기초인 자연과학을 홀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 기초학문은 경제학적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점차 자리를 잃었다”며 “응용과학을 뒷받침할 기초학문이 없다면 결국 기초학문이 아예 사라지게 되고 우리가 선진 과학국이 될 과학적인 성과를 내기는 영영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각 대학이 지역적 특색과 글로벌 수요, 국가적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등을 감안해 학과 통폐합이나 신설 등 특성화를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태웅/임기훈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