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프리미엄 시대] 산업계에선 '전·화·기' 전공 학생 귀하신 몸
경희대 전자전파공학과 졸업을 앞둔 김모씨(27). 그는 작년 하반기 대기업 3곳에 합격했다. 행복한 고민 끝에 자동차 업종의 대기업을 택한 김씨는 “동기들도 대부분 2~3곳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지만 김씨처럼 수도권 대학의 이공계 출신은 오히려 대접받으며 직장을 골라가고 있다. 특히 ‘전·화·기’로 부르는 서울 소재 대학 전자·화학·기계공학과의 취업률은 사실상 100%다.

◆취업난이라지만…공대생은 품귀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나온 Y씨(29)는 3학년 때부터 삼성전자 산학장학생으로 선발돼 매달 장학금을 받다 졸업 직후 바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는 “친구들 상당수가 삼성전자를 비롯해 3~4곳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에 입사한 J씨(연세대 세라믹공학·31)도 3곳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학점이 중하위권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는 설명이다.

찾는 곳이 많다 보니 이공계생 중에는 최고 직장으로 손꼽히는 삼성전자 입사를 마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대신 방위산업체를 택한 경희대 출신 L씨는 “삼성전자에 합격했지만 워낙 우수 인재가 많아 학부 졸업자는 전공을 살리기보다 공정관리로 빠질 가능성이 있어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공대생 3학년 때부터 ‘입도선매’

기업들은 이공계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 3학년 때부터 산학장학금, 인턴십 등의 다양한 ‘입도선매(立稻先賣)’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4개 대학과 산학 협력을 통해 ‘삼성 탤런트 프로그램(STP)’을 운영 중이다.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를 설립해 매년 80명을 뽑는다.

LG화학은 ‘R&D 석·박사 산학 장학생’ 제도를 통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프로그램 이수자를 바로 과장급으로 데려온다. 4학년 대상의 엔지니어 육성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입도선매 프로그램으로 신입사원 정원의 30% 이상을 뽑고 있다.

해외 이공계생도 타깃이다. 현대차는 해외 이공계 석·박사를 유치하기 위해 2011년부터 ‘현대 글로벌 톱 탤런트 포럼’을 열고 있다.

◆산업 고도화도 이공계 수요 증가 배경

LG화학은 지난해 글로벌마케팅 인턴십 채용 때 이공계생에게 영업직군을 개방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공계 지원자들의 평균 토익 성적이 900점이 넘었고 합격자는 950점에 달했다. 글로벌HR팀의 신정원 부장은 “보통 이공계 지원자의 토익 점수는 700점대인데 점수가 높아 놀랐다”고 말했다.

영어 실력에서 인문계와 차이가 없어지는 등 공대생의 전통적인 약점을 보완한 점이 채용시장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영업 인사 등 인문계의 전유물이던 직군으로도 공대생 진출이 활발하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뒤 두산중공업에서 채용을 담당 중인 안재헌 팀장은 “회사나 지원자의 기술적인 백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직무 적합도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이 고도화하고 융복합이 강조되면서 비즈니스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점도 이공계 약진의 배경이다. 무역업으로 출발한 LG상사는 글로벌 자원개발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했고, 삼성물산의 상사부문도 화학 철강 그린에너지 등이 주요 영역이다.

◆산업계의 이공계 선호 ‘고착화’ 단계

이 같은 이공계 선호 현상은 오랜 기간 진행돼 굳어지는 양상이다. 100대 기업 경영자 중 이공계 출신이 절반에 달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2013년 100대 기업 대표이사 164명 중 이공계 전공자는 48.7% 다. 반면 상경·사회계열 출신은 44.0%다.

올 들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이공계 출신이 대거 선임되며 ‘테크노 체어맨’ 시대가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창규 KT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내정자, 임형규 SK텔레콤 부회장 등이 급부상하며 높아진 이공계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이들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는 여러 기업을 거치며 장수하고 있다. KT 황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을 거쳤다. 임형규 부회장도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며,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KT 사장을 지냈다.

공태윤/정인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