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달라붙을 적마다 떠오르는 정경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마지막 결승선을 향해 바짝 다가들고 있는 육상 선수의 모습이다. 인생이란 경주의 결승선을 바로 지척에 두고 나는 더한층 읽기를 하고 또 쓰기를 해야 한다. 스스로 거듭 그렇게 다짐 두고 있다.”

[책마을] 인생이라는 경주의 결승선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아우르는 한국학이란 분야를 개척한 인문학자인 고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런 다짐대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일’인 읽고 쓰기를 했다.《아흔 즈음에》는 지난해 10월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김 교수의 유고 에세이집이다.

그는 갑작스러운 혈액암 발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이 든 사람들의 인생살이에 유종(有終)의 미를 꽃피우게 하고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삶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원고를 읽고 다듬었다.

저자는 여든을 너머 아흔을 바라보는 노년의 삶을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시간과 고독, 죽음과 고통, 배움과 노동, 자아와 이웃 등을 주제로 지나온 삶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고통을 토로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과 산책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서글픔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모든 삶 앞에 평등한 시간과 인간 본연의 고독을 받아들인다. 또 가족과 이웃,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저자는 책을 열고 닫는 글에서 그가 20여년간 살아온 농촌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고목을 닮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내일, 모레, 글피쯤이면 아흔이 될 이 나이에 마음만은 어김없이 나무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소슬하되 다소곳하고, 우람하되 고즈넉하게 노년의 삶을 다듬고 싶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