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더 걱정스런 철도파업 이후
“정년 때까지 한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동료간 사이는 정말 끈끈합니다. 누가 상(喪)을 당하기라도 하면 수십 명이 달려가 며칠 동안 돕는 게 예사입니다.”

지난 29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에 있는 고속철도차량기지. 한 번에 KTX 열차 20대를 정비할 수 있는 정비시설을 안내하던 코레일 간부 A씨는 코레일 특유의 조직문화를 자랑했다. 하지만 잠시 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민영화 반대’ 스티커가 붙은 노란색 안전모를 쓴 직원들과 마주치자 서로 아는 채도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A씨는 그제야 장기파업에 따른 코레일 내부 고민을 털어놓았다. “파업 참가 직원과 불참 직원들 간에 벌어진 사이를 어떻게 치유할지 고민입니다.”

철도파업이 22일째를 맞은 30일, 철도노조가 파업 철회를 발표했다. 사상 최장의 철도파업이 해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돼 다행이지만, 후유증이 만만찮다. 이번 파업으로 인한 징계 대상자는 2009년 파면·해임된 169명을 훨씬 뛰어넘을 전망이다. 코레일 측은 직원들 상호 간의 신뢰 상실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손실’로 보고 있다.

이날 기자와 통화한 코레일 지역사업장의 한 간부는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2~3개월 동안은 사업장 곳곳에서 직원들 간 보이지 않는 대립이 극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매일 같은 사업장에서 함께 얼굴을 맞대며 일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조기에 복귀한 직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따돌림’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대체인력 채용에 합격해 부기관사로 일하게 된 30대 중반의 B씨는 “정말 열심히 일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고 싶지만, 파업 참가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철도공사 직원들과 취업준비생들이 주로 가입한 인터넷 카페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대체인력 채용 등으로 들어온 직원들은 후배 취급하지 않겠다’는 글들도 올라와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로 철도 운행은 곧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 간에 쌓아올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걱정스럽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