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위스 시계
중세 유럽에서 시계를 만든 곳은 주로 수도원이었다. 수사(修士)들은 톱니바퀴들이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시간을 표시하는 기계를 꾸미고 조립하는 일이야말로 곧 하느님이 창조하신 복잡 오묘한 세계를 이해하고 찬미하는 행위로 여겼다. 시계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예물이었던 것이다. 정작 구매처인 도시와 교회 등에선 시계는 권위와 위용의 상징이었다. 청사나 성당 꼭대기에 대형 시계를 걸어놓고 시간에 맞춰 종을 치는 건 경건한 의례의 하나였다. 자연스레 도시와 성당 간 멋있고 큰 시계를 구하려는 경쟁은 치열했다. 시계는 애초부터 시간을 알려주는 지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계를 일반용으로 보급시킨 사람은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다. 1541년 제네바 시장으로 당선된 칼뱅은 귀금속류에 대해 신체 착용을 일절 금지했다. 당시 제네바에 모여 있던 위그노파 금속 세공업자들에겐 회중시계 등 각종 시계를 만들도록 권유했다. 시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제네바에 몰려들었다. 1780년 당시 제네바 수공업조합(길드)에 등록된 장인들만 5만명에 달했다.

정작 스위스 시계가 명성을 날린 것은 영국과 치열한 수출경쟁에서다. 당시 영국도 시계 산업이 꽤 발전했으며 수출도 많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 업자들은 각 국가마다 수출량을 늘리지 않고 고가상품 위주로 판매하는 차별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스위스 메이드’라는 것을 선전하는 마케팅 전략도 병행했다. 물론 고급 기능과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이들은 시계가 갖는 각별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스위스는 20세기 중반까지 대적할 국가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일본 세이코의 쿼츠(수정진동자)시계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9%까지 떨어졌다. 고급디자인과 브랜드 전략으로 지금은 다시 세계 시계산업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스위스 시계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홍콩이고 그 다음은 미국과 중국이다. 한국은 13위쯤 된다. 가장 판매 증가율이 높은 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이다.

최근 들어 중국 판매량이 급감해 스위스 시계업계가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10월까지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9%나 떨어졌다고 한다. 시진핑 신정부에서 반부패 운동을 계속해 선물용 판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계의 가치가 칼뱅이 그토록 싫어하던 귀금속과 같아지는 모양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