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교수가 '생살여탈권'…부당대우에도 제목소리 못내

대기업 임원의 승무원 폭행, 남양유업의 대리점 강매(밀어내기) 등으로 불거진 '갑을관계'의 폐해가 교육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초·중·고등학교장과 기간제 교사, 교수와 시간강사 또는 조교·대학원생 간에도 갑을 관계가 공공연히 존재한다.

학교장이나 교수가 시간강사, 대학원생, 기간제 교사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예컨대 시간강사는 전임 교수가 되려면 강의를 계속 유지하며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권한을 쥔 교수는 '슈퍼 갑'일 수밖에 없다.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이나 조교에게도 마찬가지다.

2010년 5월 시간강사 S씨는 교수 채용 과정에서 금품수수, 논문 대필 등 부정행위가 이뤄졌다고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집에 연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는 경북 지역의 한 대학교수가 터키에서 열린 국제학술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학원생 A(여)씨와 함께 출국한 뒤 현지 호텔 객실에서 A씨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귀국 후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대 인권센터가 발표한 학내 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대학원생 1천352명 중 11.1%는 '비서'처럼 교수의 개인적인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삿짐을 나르거나 출장 간 교수 빈집에 가 개밥을 줬다는 증언도 나왔다.

기간제 교사 역시 임용권을 학교가 갖고 있어 학교장이나 재단 이사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경북의 한 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은 기간제 교사들에게 재계약을 하려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등록하고 십일조를 내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사장은 기독교 학교인 만큼 기독교인을 채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명했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권한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경남 지역 한 초등학교의 기간제 교사인 김모 씨는 2009년 근무하던 학교가 1∼2학기 연속 담임을 맡겨 놓고 여름방학은 계약기간에서 빼고 급여를 주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규 교사들이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학급 담임 맡기를 꺼리면서 기간제 교사가 대신 업무를 떠맡는 경우도 해마다 늘고 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지난 3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기간제 담임교사 수는 2010년 8천74명, 2011년 1만4천924명, 지난해 1만8천344명으로 2년 새 배 이상으로 늘었다.

학교장이 기간제 교사에게 대필이나 대리운전과 같은 '잡무'를 시키거나 임용 또는 계약 연장을 하려면 거액의 학교발전기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일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교사협의회 김민선 공동대표는 8일 학교장이 마치 오너(owner)처럼 권한을 행사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며 "임용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