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씨줄과 날줄] 연말파티와 남장여자의 슬픔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남성 위주 세계, 여성의 몸부림
    단조로운 삶에 반전 작용하기도
    한국 첫 女대통령 탄생 기대 커"

    김다은 <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
    [씨줄과 날줄] 연말파티와 남장여자의 슬픔
    연말 댄스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남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포츠댄스를 처음 배울 때부터 여자에 비해 남자 수가 적었던지라, 키가 큰 필자가 쭉 남자 역할을 맡아온 탓이다. 평소와 달리 연말파티인 데다, ‘중급’반이 되고보니 스테이지에서 급에 준하는 실력도 선보여야 하고, 화려한 파티복의 여자 파트너들을 돋보이게 만들 의무가 생겨난 것이다.

    성공적인 남장을 위해 거울 앞에서 남자의 매력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걷어보니, 그동안 긴 머리칼들이 얼굴의 단점을 얼마나 잘 가려주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여성을 감추고 호리호리한 몸을 남성처럼 튼튼하게 보이려고 속옷을 두툼하게 껴입은 상태에서, 뽕이 들어간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위장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술 주변에 수염을 달아보니 그것은 제법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여자 시계도 차는 법이 없으면서 가죽줄에 박힌 알파벳 디자인에 매혹돼 1년 전에 사둔 남성용 시계까지 찾아내 준비해 놓았다.

    그 다음 남장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인 ‘십이야’,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쉬즈 더 맨(She’s The Man)’, 국내 역사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신윤복이 남장한 후 화원에 들어가는 ‘바람의 화원’과 그것을 소재로 영화로 만든 ‘미인도’가 있었다. 홍대 부근 필자의 아파트 길 건너편에 촬영 세트장이 있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도 있었고,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호위하던 남장여자 오스칼도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남장여자를 연구하면서 여자들이 남장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필자의 경우는 부족한 남성성을 보충하기 위해서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의 여자들은 남성 위주의 세계에 들어가 남성들이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여자의 외모로는 목표로 하는 것을 얻기 어렵기 때문인데, 가령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화원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축구부에서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등이다.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거나 직업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장을 선택했던 것이다.

    1년 이상이나 여자임을 봐온 사람들 앞에서 재미로 눈속임을 할 뿐 필자는 애초부터 들킨 경우라면, 드라마나 영화 속의 남장여자들은 여자임을 들켜서도 안 되고, 들키게 되면 겨우 얻은 것을 잃고 남성의 영역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그들은 암암리에 여성의 매력을 발산해서 이성에게 감정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본인마저 야릇한(!) 사랑에 빠지고마는 정해진 공식을 따라가고 있었다. 일이나 재능 대신 사랑을 얻게 되거나 그것조차 잃게 되는 것이 남장여자가 맞이하는 슬픔이었다.

    파티 당일, 갑작스럽게 닥친 예기치 못한 일로 필자의 연말 댄스파티 참석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 여파로 남자 파트너들이 더 자주 춤을 추어야 했고, 게다가 한 묘령의 여자가 너무나 완벽하게 춤을 추다가 마지막 순간에 긴 머리 가발을 훌러덩 벗어제꼈는데, 자세히 보니 스포츠댄스 학원의 원장(남자)이 완벽하게 여장(女裝)을 한 것이어서 파티장이 웃음바다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쉽게 파티에 참석은 못했지만, 남장 해프닝은 요즘 우리 사회의 인기 문화코드인 남장여자(혹은 여장남자)가 설정해 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해주었다. 남자의 세계에 진입하거나 그들이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 여성성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남성의 부족함을 채우거나 단조로운 삶의 유머나 반전으로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만드는 데 적절하게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 역사 이래 남성들의 독점이었던 대통령직을 위해 남장은커녕 ‘여성’임을 계속 강조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여성도 있음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김다은 <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

    ADVERTISEMENT

    1. 1

      [아르떼 칼럼] 음악 산업 생태계 흔드는 AI 기술

      최근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이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음악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작곡과 연주, 편곡, 하물며 보컬 생성 등 음악 창작 전반에 AI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AI 음악은 더 이상 실험이나 미래의 가능성에 머물지 않고 실제 음악 시장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에 많은 산업 종사자가 기술 발전 속도에 놀라움과 불안을 느끼는 동시에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수노(SUNO), 유디오(Udio) 등 대표적인 생성형 AI 작곡 플랫폼은 멜로디와 화성, 편곡은 물론 가사까지 포함한 음악을 단시간에 완성해 제공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아이디어 스케치나 데모 제작 도구로 인식되던 AI 음악은 이제 별도 후반 작업 없이 상업적 활용이 가능한 결과물로 진화했다. 이런 변화는 음악 창작의 진입 장벽을 급격히 낮췄고, 유튜브와 틱톡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AI로 생성된 음악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변화는 작곡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I는 기존 음악가들의 연주를 학습해 한때 가상악기의 한계로 여겨지던 현악기 연주나 보컬 표현에서도 점점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의 자연스러움을 구현해내고 있다. 이는 음악 소비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산업 구조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이런 상황은 과거 음악산업이 겪은 기술적 전환과도 닮아 있다. 소리바다와 냅스터로 대표되는 MP3와 파일 공유 서비스, 벅스뮤직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은 기존 음악산업의 질서를 흔들었고, 당시 음악은 ‘공짜

    2. 2

      [천자칼럼] 외계인 논쟁

      인류 창작물에 외계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2세기 무렵이다. 로마제국에서 활동한 루키아노스의 소설 ‘진실한 이야기’는 주인공 일행이 달에서 외계인과 전쟁을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키아노스가 묘사한 외계인의 모습은 공상과학 영화 속 에일리언 못지않다. 엉덩이에서 털이 자라고 배꼽에 눈이 달려 있다. 학계는 외계인 실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우리 은하에는 태양처럼 빛과 열을 내는 항성이 2000억 개 넘게 존재한다. 1000억 개 이상 항성을 보유한 은하는 관측된 것만 1700억 개에 이른다. 최소 170해 개에 달하는 항성계 중 어딘가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외계인이 지구 문명과 접촉했는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거세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외계인 존재를 숨기고 있으며, 냉전 시대부터 운영된 네바다주 공군 연구소 ‘51구역’에 외계인 시체와 UFO 잔해를 보관 중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이런 믿음이 확산한 데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한몫했다. 지미 카터는 UFO를 목격했다고 밝히며 당선 후 감춰진 비밀을 공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국방부에 자료 공개를 요청했으나 ‘국가 기밀’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인 조지 HW 부시는 한 모금 행사에서 “미국인들은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언제 외계인과 UFO의 진실을 공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와 버락 오바마가 외계인 논쟁에 뛰어들었다. 오바마가 팟캐스트에서 “외계인은 존재한다”고 발언하자 트럼프가 “기밀을 누설했다”고 비

    3. 3

      [사설] 러·우 전쟁 장기화, 중동도 전운…힘이 지배하는 국제 질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로 접어드는데도 출구를 못 찾고 끝없는 소모전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엊그제 열린 세 번째 ‘3자(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났다. 핵심 쟁점인 영토 분할 문제를 둘러싼 간극이 좁혀지지 않아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종전은커녕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될 판이다. 벌써 양측 사상자만 러시아 120만 명, 우크라이나 60만 명 등 200만 명(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추산)에 육박한다. 러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상황은 말 그대로 한계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후방 도심 에너지시설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눈덩이인 데다 빼앗긴 영토를 되찾을 가능성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미국이 타협을 종용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때로 러시아를 역성들고 국제사법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푸틴이 여전히 활개 치는 모습에서 냉엄한 국제 질서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러·우전쟁뿐만이 아니다. 강 대 강 힘의 충돌과 이로 인한 현상 변경이 세계 각지에서 잇따른다. 이란이 핵프로그램 폐기를 거부하자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 군사력을 중동지역에 집결시켰다. 당장 이번 주말에라도 타격할 태세다. 화약고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트럼프가 막 출범시킨 ‘평화위원회’라는 생소한 기구가 유엔 대신 해결사로 나선 점도 종전에 볼 수 없던 일이다. 선뜻 예상하기 힘들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을 미국이 감행한 데서도 국제정치의 뉴노멀이 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