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리봉동·대림동·가산동 일대 ‘조선족 타운’에선 ‘불법체류자들을 합법화해주는 비자 브로커가 있다’는 얘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기복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관장은 “1주일에 몇 번씩 ‘합법화 정책이 추진 중이라던데 사실이냐’는 불법체류자들의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정책 기획 등을 담당하는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외국인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한 당국의 무관심과 냉대가 범죄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그런 게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지난 10년간 ‘불법체류자 합법화 관련 사기’가 경찰에 적발된 경우는 지난 8월 해양경찰청 외사계가 적발한 ‘농업과학기술교육센터 사기 사건’ 한 건이다. 해양경찰청 외사계는 불법체류 외국인 307명을 상대로 ‘가짜 외국인 등록증’을 파는 수법으로 1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사이비 종교단체 이사장과 종무원장을 구속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5월 경기도청으로부터 종교법인 설립 허가를 받은 뒤 산하에 ‘농업과학기술교육센터’라는 유령단체를 만들고 홈페이지까지 열었다. 모집책별로 철저한 성과급 보상도 이뤄졌다. 외국인 관련 범죄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가짜 비자 브로커가 있다는 첩보는 입수했지만, 피해자를 찾기 힘들어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일관성 없는 당국 정책이 비자 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0년 2월 법무부는 민원인이 직접 관청을 찾아 하던 방문취업비자 발급 업무와 외국인등록 신고, 체류기간 연장 및 재입국 허가 등을 변호사·행정사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지침을 세웠다. 민원 창구의 혼잡을 해소한다는 명목이었다. 이때부터 외국인 사회에서 행정사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됐고, 한국인보다 정보력이 달리는 외국인들이 행정사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행정사를 사칭하는 가짜 브로커들이 난립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 지침은 외국인과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지난해 없어졌다.

하헌형/이지훈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