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예규에만 규정..인권단체 "순찰 내실화가 해법"

경남 통영에서 여자 초등학생이 성범죄 전과자에게 살해당하면서 경찰 우범자 관리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찰이 피의자 김모(44)씨의 동향을 주기적으로 파악해 왔고 사건 발생 전에도 김씨 주변을 탐문했지만 결국 범행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범자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찰에 인권 단체는 순찰 강화 등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청 예규 근거로 우범자 관리 = 27일 경찰에 따르면 2005년 제정된 경찰청 예규 '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우범자를 관리한다.

예규를 보면 강간과 강제추행 전과자의 경우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3회 이상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은 '첩보수집 대상'으로 분류한다.

이에 따라 경찰서장은 수사(형사)과 직원 중 우범자 담당자를 지정하고, 일선 지구대(파출소)장은 첩보수집 대상자별로 담당 직원을 지정한다.

지구대(파출소)의 담당자는 첩보수집 보고를 3개월에 1회 이상 올려야 한다.

이 예규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에 명시된 경찰관의 직무범위 중 '치안정보의 수집ㆍ작성 및 배포'(2조4항)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2010년 부산에서 여중생이 성폭행 후 살해된 '김길태 사건' 이후에는 성폭력 전과자에 대한 관리 수위를 한층 높인 대응 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아동(13세 미만) 성폭력 전과자 가운데 금고형 이상을 2회 이상 받은 자 ▲청소년(19세 미만) 대상 성폭력 전과자 중 금고형을 3회 이상 받았거나 2회이지만 형기의 합계가 3년 이상인 자 ▲성인 대상 성폭력 전과자 중 금고형을 3회 이상 받은 자는 '중점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경찰서의 담당 형사와 일선 지구대(파출소) 담당 직원이 이중으로 관리하고 첩보보고 주기도 월 1회로 짧다.

중점관리가 아닌 일반 첩보수집도 성폭력 전과자에 한해 종전 '금고형 이상을 3회 이상 받은 자'에서 기준을 강화, 아동은 1회, 청소년과 성인은 2회 또는 1회로 하되 재범 위험자로 대상을 늘렸다.

◇인권침해 우려..'간접조사' 방식도 한계 = 그러나 경직법에 우범자 관련 조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상태다.

헌법 37조2항은 국민 권리를 '국가 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만큼 우범자 관리에도 당연히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소남 의원 등 10명이 우범자 관리에 관한 조항을 추가한 경직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처리되지는 못했다.

인권단체들은 형이 만료된 전과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동향을 파악하는 활동은 이중 처벌에 해당하고, 같은 사건을 거듭 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보호관찰, 전자발찌 부착 등은 법적 근거가 뚜렷해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는 반면 경찰의 우범자 관리는 근거가 없어 업무 수행에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인권침해 논란을 피하려다 보니 경찰이 택할 수 있는 방식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기본 원칙은 '비접촉ㆍ비노출'이다.

우범자를 접촉하지 않고, 우범자가 자신이 관리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자면 이웃이나 가족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상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우범자의 거주지역을 찾아가 이웃에게 "옆집 사는 ○○○씨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와 같은 질문을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관리 대상자의 범죄 전력을 이웃이 알게 되고, 대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어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자칫하면 경찰관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당하거나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

아파트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이웃 간 왕래가 별로 없고 서로 모르는 경우도 많아 동향을 파악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서울시내 한 파출소의 경찰관은 "도시 사람들은 유대관계가 없어서 우범자 동향을 파악해 첩보를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특히 우범자의 범죄 전력을 숨기고 이웃을 탐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통영 사건 발생 이틀 전 피의자 김모(44)씨의 주변인을 탐문하다 '김씨의 생업이 잘 안 돼 표정이 어둡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을 두고 "그 정도라도 파악한 게 어디냐"는 반응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인권단체 "우범자 관리 실효성 없어" = 인권단체들은 재범 우려자들의 범죄를 막는 데 지금과 같은 첩보수집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학교 주변이나 범죄 취약지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순찰을 강화하고, 필요한 곳에 인력을 많이 배치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수많은 우범자를 24시간 감시하지 않는 한 탐문 등을 통한 관리는 무의미하다"며 "취약지역에 대한 도보 순찰을 강화하고 그에 부합하도록 인력을 운용, '필요한 곳'에 경찰관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국장은 "수원이나 제주, 통영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은 경찰에게 법적 권한이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며 "시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에 집중하는 치안 활동을 펴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복역 중인 성범죄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을 바로잡을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창익 국장은 "성범죄자들을 위해 교정시설에 여성단체나 관련 학계 인사들을 불러 성 인지교육 등을 해야 하지만 공간이나 인력, 예산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재소자 교육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도 범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과장급 간부도 "교정시설이 어떤 이들에게 일종의 '범죄학교'가 되는 현실은 문제"라면서 "경찰의 우범자 관리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들이 사회로 나오기 전에 충분히 교화하는 것이 본질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동호 기자 pulse@yna.co.kr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