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 용의자 실명·사진 공개
"국민 알권리 우선"vs."여론에 의한 이중처벌"

통영 초등학생 살해사건과 올레길 여성관광객 살해사건 등 잇따른 강력범죄를 놓고 일부 언론이 실명 보도 하면서 흉악범의 신원을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언론계와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일부 언론사는 이들 사건 용의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보도하거나 사진을 지면이나 화면에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 같은 보도 행태를 놓고 사회적인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하는 것이 맞다는 찬성 의견과 무죄추정의 원칙과 여론에 의한 이중처벌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김창룡 인제대(신문방송학) 교수는 "용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기본적인 인권과 인간성마저 부정하는 흉악범죄자의 인권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며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나 살인자, 반인륜적 범죄자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처럼 흉악범의 신원까지 보호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며 "다만 흉악범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볼지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허일태 동아대(법학) 교수는 "용의자가 자백을 했다고 해도 이름이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법에 명시된 무죄추정과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며 "흉악범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면 감정적인 복수는 할 수 있겠지만 법적 처벌과 중복되는 이중처벌을 가하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허 교수는 "해외 언론이 용의자의 신원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명망이 있는 정론지가 아닌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선정적인 보도 태도가 국민이 알아야 할 다른 사안들에 대한 보도를 덮을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도주 중인 범인처럼 재범의 개연성이 현저히 높을 때는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언론에서 범죄자의 신원 공개 수준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실명과 얼굴이 검거 직후부터 일부 언론에 공개되면서부터다.

이듬해 경찰이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범 김길태의 얼굴 공개를 시작으로 강력범죄 용의자들의 신원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 언론중재위원회는 '시정권고 심의기준'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가 누구인지 공표해서는 안되지만 당국이 공개수사를 하는 경우나 행위자의 특성상 사회적 중요성을 지니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되 '행위자의 특성상 사회적 중요성을 지니는 경우'를 예외로 인정하는 것이다.

언론중재위는 관련 시정권고 청구가 들어오면 이 같은 심의기준을 적용하되 수사 당국의 피의자 얼굴 공개 원칙을 정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법은 8조 2항에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사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에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것 등 네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면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언론중재위 관계자는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사건'의 범위를 어느 수준에 둘지에 대해 각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준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