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으로 눈물 짓는다고 한다. 배란기에 맞춰 계획 임신을 시도해도 성공률은 20% 안팎밖에 안 된다는 마당이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함 그 자체다. 임신이 가능하자면 정자가 3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난자를 제때 만나야만 한다.

난자는 여성의 몸 속에 처음부터 존재하며(미성숙 난세포), 가임기 동안 매월 하나씩 수정 가능한 상태로 배출된다. 정자는 출생 후 만들어지며 길이 0.05~0.06㎜의 올챙이 모양이다. 머리 부분엔 핵산(DNA)과 난자의 보호막을 녹이는 효소가 들어 있다. 목 부분에선 꼬리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꼬리는 가느다란 실묶음처럼 생겨 운동을 담당한다.

수정이 이뤄지려면 정자의 수와 운동성 모두 중요하다. 건강한 남성의 정액 1㎖ 당 정자는 6000만~9000만마리. 2000만마리 이하면 희소정자증으로 여겨진다. 정자 수 걱정이 늘어나면서 정액을 특정 용액에 섞어 떨어뜨렸을 때 붉은 줄이 나타나는지로 정상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키트도 나왔다.

정자가 줄어드는 이유로 기름진 식사와 비만도 꼽힌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질 애트먼 박사팀의 연구에선 고지방식 그룹(하루 칼로리 중 지방이 37%)의 정자는 저지방식 그룹(26%)보다 평균 43%나 적은 것으로 타났다. 살 찌면 호르몬 균형이 깨져 정자 생성이 잘 안 된다고도 한다.

운동성(활력)도 중요하다. 배란된 지 12시간 안엔 도달해야 하는 까닭이다. 성급하게 굴면 지쳐 나가떨어지고 늦어도 기회는 없다. 일본 야마구치대 조사에선 운동을 너무 안해도, 지나치게 해도 탈인것으로 밝혀졌다.

과도한 운동은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시키고 체온 상승과 함께 부고환 온도를 올림으로써 정자활동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무선 인터넷에 연결된 노트북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세 배 많은 전자파를 방출함으로써 정자 활동성을 낮춘다고 보고됐다.

영국 버밍엄대와 워릭대 연구팀이 여성의 신체조건과 같은 관에 정자를 넣고 난자에 이르는 여정을 살폈더니 중앙통로에서 멋지게 헤엄치는 게 아니라 벽을 따라 포복하듯 기어가더란 발표다. 정자의 운동 특성은 여전히 수수께끼라지만 주위의 공격과 질시를 피해 안전한 경로를 택하려 애쓰는 것만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이들은 또 구부러진 곳에선 방향을 틀지 못해 벽을 들이받거나 뒤엉키고, 복잡한 곳에선 길을 잃고 헤맸다고 한다. 우리 모두 3억 대 1의 경쟁에서 이기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고 태어났다는 얘기다. 그에 비하면 살면서 부딪치는 난관쯤은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힘들더라도 자신을 믿고 기운내시길.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