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글로벌 증시의 최대敵 '좀비론'과 '숙취현상'
지난 1분기 성과를 토대로 최근 잇달아 수정 발표되고 있는 세계 경제 예측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느 때보다 ‘좀비(zombie)론’이 고개를 들고, 증시에서는 ‘숙취(hangover)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좀비’란 조직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직장에는 꼬박꼬박 출근하지만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정책도 정책당국의 신호대로 정책 수용층이 반응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잘 작동되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세계경제는 다시 침체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정도가 가장 심한 국가는 일본이다. 1990년대 이후 거듭된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제로’ 금리와 국내총생산(GDP)의 230%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채무 등이 장기간 좀비 국면을 대변해 주는 후유증이자 상징물이다. 경제 구조적으로 5대 함정에 장기간 빠져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일본의 내수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큰 편이어서 내수 확대 없이는 좀비 국면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내수 부진은 당장 해결하기 곤란한 구조적 요인들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재정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수요를 대체해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노다 정부는 수출 등을 통해 내수 부진을 보완하고 장기간 침체에 빠진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엔고 저지에 주력했다. 취임 이후 엔화를 약세로 돌려놓기 위해 40조엔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럽위기’라는 복병이 지속되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국민 지지도가 28%로 떨어질 만큼 좀비 국면에 몰리고 있다.

모든 위기국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면 불가피하게 외부 수혈을 받게 된다. 바로 구제금융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은 ‘IMF(국제통화기금) 신탁통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에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이때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구제금융을 받은 대가로 위기극복 의지를 보여주면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은 뒤에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좀비국’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금 모으기까지 하며 위기극복 의지를 보였던 한국과 달리 그리스에서는 오히려 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모든 경제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잘 통용된다. 유럽 국가처럼 무늬만 회원국(bad apples)과 건전한 회원국(good apples)을 ‘통합’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건전한 회원국들도 썩게 된다. 유럽위기가 2년이 넘도록 장기화함에 따라 이제는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같은 ‘건전한 회원국’들까지 위기에 전염되는 임계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런 만큼 그리스가 더 이상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통합에서 탈락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조지 소로스 등이 제시하는 ‘투 트랙(two track)’, 즉 ‘건전한 회원국’들은 계속 통합단계를 밟아가고 차제에 ‘무늬만 회원국’들은 탈락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글로벌 증시의 최대敵 '좀비론'과 '숙취현상'
최근 들어 소비 회복세가 뚜렷하지만 미국 경제도 좀비론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회장은 이미 오래전에 미국 경제 앞날의 최대 적(敵)으로 ‘좀비 소비자’를 꼽았다. 국민소득 기여도에서 소비가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상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소비지향 생활패턴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미국 소비자들이 좀비 현상을 보이는 것은 디레버리지(deleverage) 행위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부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려 왔다.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 파트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는 미국 국민들의 디레버리지 행위를 스크루(screw), 즉 ‘쥐어짠다’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에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의 협조가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등을 겨냥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쏟아내다 보면 우리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증시도 마찬가지다. 국내 증시만 하더라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일부 대표기업을 제외한 주가지수는 올 들어 수많은 재료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에 비해 변한 것이 없다. 전형적인 ‘좀비 증시’다. 일부에서는 주가가 시원스럽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조금씩 하락하는 것을 ‘숙취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측기관들이 당면한 ‘좀비론’과 ‘숙취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정책반응 메커니즘을 복원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