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지시 입증이 관건…영장 청구여부 고심중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인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김효재(60)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가 어떻게 결정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15일 김 전 수석을 소환해 14시간가량 조사한 뒤 밤늦게 돌려보냈다.

김 전 수석은 고승덕 의원실에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하게 하고, 안병용(54.구속기소)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에게 당협 간부들에게 뿌릴 2천만원을 구의원들에게 건네도록 하는 등 캠프 차원의 금품 살포를 지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박희태 후보 캠프 관련자 진술과 각종 정황 증거로 볼 때 김 전 수석이 돈 봉투 살포 과정의 핵심이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김 전 수석을 기소해 재판에 넘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느냐이다.

물론 돈 봉투 살포의 지시선상에 있었다는 점이 명확하다면 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불가피하다.

이미 안 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돈을 건네며 당협 간부들에게 뿌리라고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진술과 정황은 김 전 수석에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고승덕 의원실에서 돈 봉투를 되돌려받은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고명진(40)씨가 김 전 수석에게 이를 보고했다는 점, 김 전 수석이 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왜 돌려주느냐'고 말했다는 점, 안 위원장이 현금 2천만원을 가져온 장소가 여의도 대하빌딩 캠프 사무실의 김 전 수석 책상 위였다는 구의원의 진술 등으로 볼 때 김 전 수석이 지시자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김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돈을 되돌려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고 의원에게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돈 봉투를 살포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검찰의 고민이 있다.

정당법은 금품을 제공하거나 받은 자 또는 이런 행위를 지시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수석이 지시했다는 정황은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재판에 넘길 순 있어도 인신구속까지 할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당법 50조인 '당대표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가 2002년 신설돼 이 규정으로 처벌된 전례나 유죄판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도 검찰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이다.

안 위원장을 정당법 위반으로 구속기소한 것이 거의 유일한 선례가 되는 셈이다.

공안분야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정당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거의 없다"며 "흔치않은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처분하는 게 맞는지 신중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법 50조를 적용한 선례가 드문 상황에서 기소 이후 재판까지 고려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확실한 물증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숱한 정황증거 속에서도 '김 전 수석이 돈 봉투 살포를 지시했다'는 직접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물증을 비장의 카드로 꺼내 들어 과감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의 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검찰의 돌파구는 남아 있다.

고 의원실에 돈 봉투를 돌린 인물로 지목된 곽모(33)씨로부터 '김 전 수석이 돈 봉투를 돌리라고 했다'는 진술을 받으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 체류 중인 곽씨가 검찰의 귀국 종용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검찰이 박희태 의장을 소환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모두 마친 뒤 장고(長考)를 거쳐 김 전 수석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