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이석채 회장의 과욕
“고객경영을 한다면서 왜 자기들 얘기만 고집하는 것일까요.”

법원이 KT의 2G(세대) 서비스 중단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기 전날, 한국경제신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KT 2G 가입자였다. 그는 “그동안 KT에서 수십차례 걸려온 전화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할 지경”이라며 화를 냈다. “제가 왜 2G 서비스를 쓸 수밖에 없는지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3G가 더 좋으니 전환하든가, 아니면 통신사를 갈아타라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1990년대 후반부터 KT PCS를 사용해온 장기 고객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같은 번호를 써 왔기 때문에 번호 유지가 필요했다. 하루종일 음성통화만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필요없었다. 하지만 그는 “KT는 나를 첨단 기술에 무지하고 회사에 도움도 안 되면서 보상만 바라는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분노했다.

그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이석채 회장은 지난 4월 2G 서비스 종료신청서를 방통위에 제출한 뒤 3G의 기술적 우월성을 강조해 왔다. 기자간담회에서 “3G 서비스가 더 좋은데 그걸 모르고 아직도 2G를 쓰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의 이런 인식은 회사 직원들에게도 그대로 전파됐다. KT의 한 직원은 심지어 “2G 사용자들은 아마 끝까지 버티면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웃기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2G 가입자에 대한 KT의 인식이 이랬기에 마치 스토커처럼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끊임없이 전환을 강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서비스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3G가 모든 사람에게 2G보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선택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입자)들의 고유 영역이다.

KT도 나름대로 절실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2G 사용자를 빨리 ‘정리’해야 그 주파수에서 4G를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 다급함을 이유로 장기 고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함으로써 혁신과 선도 통신사로서의 이미지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KT는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2G 종료 약속도, 4G 개시 약속도 모두 지키지 못했다. 이석채 회장의 과욕이 부른 재앙이다.

임원기 IT모바일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