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전기요금 올려놓고 정전이라니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도 못하면서 요금을 올리고, 기업들에 전력 사용량을 10% 줄이라고 압박할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정전사고로 피해를 당한 울산석유화학공단의 한 관계자가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월에 이어 비슷한 정전사태가 재발하자 석유화학단지 내 기업들은 답답함을 쏟아냈다.

지난 6일 오후 한국전력 변전소의 선로 차단기 고장으로 16분가량 전력이 끊긴 뒤 울산석유화학공단 입주기업들의 피해는 업체별로 수백억원대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 입주 기업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산업계에 절전을 유도하고 나선 것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 정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히니 아껴 쓰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전력사용을 줄여 전력난을 막겠다며 한국전력에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4.5% 올리도록 허용해놓고도 서비스 품질 관리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원망이 가득했다.

울산석유화학공단 내에서도 원유정제시설을 갖고 있는 SK에너지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설이 정전으로 가동이 중단돼 현장은 패닉상태”라며 “창사 이래 이 정도 정전사태는 처음이며, 기회비용이나 이후 가동률 저하, 제품출하 지연, 불량률 상승 등까지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엄청날 것”이라고 했다. 원유정제 공정은 순간 정전으로도 모든 공정이 중단되고, 공정 과정에 남아 있던 제품은 버려야 한다. 전면 중단된 공장을 다시 가동하는 데만 최소 1주일은 걸린다. SK 측은 재가동을 준비하며 시설 손상이 없기만을 바라고 있다. 시설 손상까지 발생한다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피해액 추산이 마무리되면 입주 기업들은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불사할 태세다. 그럼에도 한전이 배상하는 것은 정전 시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전기요금의 3배 정도일 뿐이다.

울산화학단지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만큼 공급 차질이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다. 정전은 단 16분이었지만, 그것이 석유화학업체들에 남긴 후폭풍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 됐다. 전기료를 올린 만큼 한전의 책임의식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