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적 인기..주류 문화 파고들어
단기 수익성 위주 접근 경계해야

일본 지상파 TV에 카라의 CF가 나오고 도쿄 도심 대형 레코드 가게에서는 2PM의 신곡이 흘러나온다.

일본 공연 문화의 중심인 도쿄돔에는 4만5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K팝(K-POP) 콘서트가 열린다.

이제 아시아 최대 음반시장인 일본에서 K팝은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다.

K팝은 점차 일본의 주류 문화로 파고들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이미 내수 음반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그러나 높아진 인기만큼 유혹도 많다.

많은 아시아인의 주목을 받는 지금 K팝은 아시아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가느냐 아니면 열풍으로 끝나고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일본 달구는 K팝 열풍 = 지난 13일 낮 신주쿠의 한인상가 밀집지역인 오쿠보 거리는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류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와 한식당은 오가는 손님들로 부산했고 떡볶이와 호떡을 파는 간이 분식집 앞에도 줄이 늘어섰다.

분식집 주인은 "손님이 작년보다 3배 늘었다.

주변 가게들이 장사가 다 잘 된다"며 쉴새없이 포장용 그릇에 음식을 담았다.

한류 상품을 취급하는 한 대형 매장은 평일임에도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장 직원은 "작년 여름부터 갑자기 손님이 늘어 평일 5천명, 주말에는 8천~9천명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신주쿠역 근처의 타워 레코드 매장에 들어서니 샤이니의 포토 갤러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매장 좌측 벽면은 카라 멤버들의 대형 포스터가 장식했다.

J팝 신보 코너 바로 뒤에 위치한 K팝 코너에는 소녀시대, 2PM 등 인기 아이돌의 예전 앨범과 신보들이 배치됐고 보이 프렌드와 같은 신인 그룹의 CD도 한구석을 차지했다.

7년째 이 곳에서 일했다는 한 여직원은 "최근에는 일본 음악과 K팝의 판매량이 비슷하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K팝이 인기를 얻었다"며 "소녀시대와 에프엑스 등 걸그룹들의 댄스 음악이 특히 잘 팔린다"고 말했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체감한 K팝 열풍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9년 한국 음악산업의 일본 수출액은 2천163만달러로 2008년보다 92.9% 급증했다.

아이돌을 중심으로 K팝의 인기가 최근 급속도로 확산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수출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K팝 열풍이 거세다.

2009년 중국 수출액은 236만달러로 28.5% 늘었고 동남아시아 수출액은 641만달러로 전년 대비 149.6% 급증했다.

태국은 해외 음반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한국 음반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K팝 가수를 따라한 댄스 그룹까지 대거 등장했다.

◇'K팝' 브랜드가 되다 = 2~3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K팝은 마니아들이 즐기는 음악이었다.

K팝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아이돌이었고 선두에 동방신기가 있었다.

앞서 보아가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한국 가수보다는 글로벌 아티스트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SM엔터테인먼트 정창환 이사는 "동방신기는 일본 기획사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 아티스트로서 틈새를 공략했고 3~4년의 노력 끝에 성공했다"며 "동방신기가 성공하자 K팝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아이돌 붐이 형성되면서 국내 인기 연예인들의 연착륙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최근 진출하는 한국 가수들은 선배들과 달리 'K팝 스타'라는 점을 강조한다.

동방신기의 성공으로 초반 지지 기반을 다져줄 K팝 팬층이 형성된 데다 K팝 스타는 실력파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도쿄 신주쿠에서는 K팝 팬층을 겨냥한 한국인 유학생 그룹이 결성되기도 했다.

K팝 열풍에 한국 관련 상품까지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일본내 한류 관련 매장을 운영하는 킴스클럽의 이근행 과장은 "처음에는 스타 관련 기념품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는데 요즘에는 화장품 판매 비중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KBS프로그램을 해외에 방송하는 KBS월드 관계자는 "K팝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돌이 대거 출연한 '청춘불패'나 '출발 드림팀2'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력으로 무장한 '프로 아이돌'에 매료 = 많은 일본 팬들은 한국 아이돌의 프로다운 모습에 매료됐다고 입을 모은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의 일본 아이돌에 비해 한국 아이돌은 뛰어난 노래와 춤으로 무대에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것.
빅뱅 팬이라는 회사원 히카리 사이토(26.여) 씨는 "한국 아이돌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한다.

한마디로 고품질(high quality)"이라고 호평했다.

음악 관계자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KBS '뮤직 뱅크' 도쿄돔 공연을 담당한 김충 책임프로듀서는 "다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친 우리나라 아이돌은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다"며 "일단 유튜브나 SNS 등으로 해외 무대의 진입장벽이 약해진 상태에서 프로다운 매력에 해외 음악팬들이 끌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뮤직 뱅크' 공연에 참여한 미국 공연기술업체 PRG의 케빈 캐닝 운영감독도 "공연을 보니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겠다"며 "노래와 춤 모두 훌륭했고 프로다웠다"고 평했다.

에이벡스를 비롯해 일본의 대형 음반사들은 국내 아이돌 가수들을 영입하는 데서 벗어나 신인 육성 단계에서부터 한국 기획사들과 협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 열풍의 그늘..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 K팝이 아시아에서 거침없는 기세를 보이고 있지만 K팝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현재 인기를 끄는 장르가 아이돌 위주의 댄스 음악에 편중됐고 동방신기 이후 톱스타가 배출되지 않는 점이 이런 우려를 키운다.

여러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15팀이 출연한 '뮤직 뱅크' 도쿄돔 공연 관객의 70% 이상이 동방신기 팬으로 추정될 정도로 K팝에서 동방신기 의존도는 아직 크다.

단기 수익성 위주의 접근도 경계 대상이다.

스타급 아이돌 뿐 아니라 신인 아이돌까지 앞다퉈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돈을 노린 일회성 행사에 치중하다보면 애써 다져놓은 K팝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국내 방송사의 대형 공연은 돈벌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음반 관계자는 "방송사들의 공연은 컴필레이션 음반과 같다.

잘 팔리지만 음반 업계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며 "가수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미 국내 가수들의 단독 공연이 충분히 가능한 일본보다는 미국, 유럽, 남미 등 K팝이 덜 알려진 지역에서 하는 게 맞다"라고 꼬집었다.

국내 연예기획사들의 불합리한 계약관행과 수익배분 문제도 K팝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권 변미영 선임연구원은 "신한류가 글로벌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 통용되는 투명하고 체계적인 계약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J E&M 일본사업담당 강상돈 상무는 "K팝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건 한일 아티스트들이 꾸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이라며 "제작 시스템과 프로모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도쿄.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okk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