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 중앙은행 부총재 회의에서 각국의 외환보유액에 상한을 설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두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는 찰스 콜린스 미 재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이 제안에 대한 한국의 지지를 미리부터 요청했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수치 목표 등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이런 제안이 당장 우리의 외환보유액 관리에 어떤 변화를 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요구는 어떤 외환이론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실성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더구나 오늘날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한 정당한 해법이 될 수도 없다고 본다.

물론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액이 위안화의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인 결과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런 인위적인 환율 관리가 소위 글로벌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미국 측 지적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3조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 중이면서도 여전히 자국 통화 가치의 현실화에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걱정되는 것은 3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으로 이 분야 세계 7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완전한 자유변동 환율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입이나 자본시장 개방에서 중국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우리로서는 특정한 경제위기 시에 외환의 부족이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다. 더구나 미국은 1997년 위기 당시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등 과도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던 것이 사실이어서 이들 문제에 대한 안전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외환보유액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와 생각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미국과 한국이 무조건적이고도 전면적인 달러 스와프 계약이라도 체결하지 않는 한,외환보유액에 상한선을 정하자는 미국 측 요구를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시장 교란의 주범이 바로 미국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마땅하다. 지금 세계 각국을 수시로 넘나들며 시장을 교란시키는 투기자금이라는 것도 2차에 걸친 양적완화에 기인하는 것이란 점을 미국은 인정해야 한다. 이런 미국발 요인들이 제거되거나 순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작정 외환보유에 상한을 두자는 주장은 수용하기 곤란하다. 글로벌 불균형은 시정돼야 하겠지만 미국은 나라 밖에서 희생양을 찾기 전에 먼저 자국내 경제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