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가 사회주의 선언을 한 지 50주년을 맞아 16일부터 19일까지 공산당대회를 개최한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해 내놓은 혁신적 경제개혁안을 승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쿠바는 경제위기 등을 이유로 1997년 이후 14년간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이번 당대회는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도 아바나에서 열릴 예정이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당대회에서 계급투쟁 구호를 개혁 · 개방으로 대체하면서도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해 경제 고성장을 이끈 것처럼 라울 의장도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하는 자본주의 실험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쿠바의 자본주의 실험

라울 의장은 지난해 9월 공무원 숫자를 줄이고 사기업과 자영업자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공무원 510만명 중 20%인 100만명을 민간으로 보내겠다는 것이 골자다. 사실상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표방한 것이다. 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이번 당대회에서 개혁안에 대한 승인이 나면 본격적인 경제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쿠바 정부는 이를 위해 자본주의식 영업이 가능한 178개 자영업 분야를 선정하는 작업을 마쳤다. 공무원들이 도맡았던 회계장부 관리,건물 도색,벽돌 제조,공원 관리,야채 판매 등을 앞으로 민간 자영업자가 담당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쿠바는 전체 고용인력의 90% 이상이 사실상 공무원 신분이다. 정부는 민간 부문 사업 규제를 풀어 해고된 공무원들을 시장으로 유도함으로써 일자리 감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방침이다.

◆라울,제2의 덩샤오핑 될까

쿠바의 경제개혁을 이끄는 라울 의장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동생이다. 2008년 의장에 정식 취임했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피델은 1965년부터 맡아온 공산당 제1서기직에서도 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라울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라울 의장이 선택한 개혁의 방향은 덩샤오핑이 1980년대 초반부터 채택한 실용주의 노선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울 의장이 개인 기업을 양산해 실업자가 된 공무원을 흡수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은 1990년대 국유기업 개혁을 통해 대규모 샤강(下崗 · 일시 휴직)을 용인한 중국이 거티후(個體戶 · 개인사업자)를 양산해 실업자 발생의 충격을 최소화한 노선을 떠올리게 한다.

개혁이 성공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계획경제에 익숙한 국민들이 벌써부터 개혁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이달까지 50만명의 공무원을 우선 감축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공무원들의 반발로 잠정 연기된 상태다.

◆미국 중국 등 '러브콜'

AP통신은 지난해 쿠바 공산당이 지방 당원들에게 배포한 보고서를 인용해 쿠바가 이중환율제를 폐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쿠바는 달러화와 쿠바 페소화 가치를 거의 1 대 1로 고정시킨 외국인 전용의 태환 페소와 국내에서 통용되는 일반 페소를 별도로 운용하는 이중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고정환율제가 국제화를 막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 외국인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1994년 이중환율제를 폐지한 것과 같은 이치다.

쿠바가 시장 개방을 준비하자 미국 중국 등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쿠바를 방문한 자리에서 "5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대쿠바 금수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자본은 1억1700만달러를 투입해 아바나에 호텔을 지을 예정이다.

쿠바가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풍부한 자원 덕분이다. 니켈 매장량은 세계 3위이며 영해에 원유도 묻혀 있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고등교육을 이수해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