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퓰리처상,부커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은 사람들의 작품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오랫동안 사랑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한국 문학도 외국 평론가나 일부 출판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 폭넓게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

이구용 임프리마코리아 상무(사진)는 해외 출판물의 국내 수입에 주력하다 2004년부터 한국 문학 수출에 앞장서온 에이전트다. 소설가 김영하 조경란 신경숙 한강 이정명씨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아시아와 영미권에 소개됐다. 그는 2008년 말 한국문학번역원이 수여하는 에이전시 부문 '출판 저작권 수출상',지난해 '책의 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문학 수출 과정과 국내 작가들에 대한 얘기를 담은 《소설파는 남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를 출간했다.

첫 동반자는 소설가 김영하씨였다. 2005년 5월 그는 김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을 읽고 홍익대 근처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단 한 권을 읽었을 뿐이었지만 자신이 느끼는 김씨의 스타일과 개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의 열정에 반한 김씨는 그 자리에서 모든 작품을 맡기겠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나머지 장편 소설들을 모두 읽고 뉴욕 맨해튼으로 출장갔을 때 현지 에이전트에게 김씨에 대해 운을 뗐죠.사업 미팅은 주로 영미권 작가의 작품을 제가 소개받는 형식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던 거예요. 휴대전화로 미국인 에이전트와 한국에 있는 작가를 연결하기도 했죠."

이 상무는 미국 에이전트에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프랑스어판을 건넸다. 2개월 후 영문판권이 미국의 내로라하는 문학 전문 출판사에 팔렸다는 낭보를 받았다. "운도 좋았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례였습니다. 작가가 미리 영문으로 번역해 놓은 원고가 있다고 해서 그걸 미국으로 보냈더니 반응이 좋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미국 출판사 편집자가 영문 번역이 아닌 프랑스어판을 가지고 검토했습니다. 새 역자를 고용해서 영문 번역 작업을 다시 했어요. 그렇게 해서 2007년 7월 《I Have the Right to Destroy Myself》가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이것이 첫 성공이었죠."

이 책은 2년 만에 1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김씨의 다른 소설들도 잇따라 수출됐다.

이 상무는 미국 유명 출판사 블룸즈버리에서 출간된 조경란의 《혀》,엄마에 대한 인류 보편의 정서와 한국적 특수성을 잘 버무려 19개국에 수출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의 성공 과정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일단 관심있는 책은 작가나 출판 관계자를 만나 에이전트 계약을 맺습니다. 해외 에이전트들과 그 작가에 대해 상의하고 의견이 일치하면 전문 번역가를 찾죠.시놉시스 등은 일차적으로 작가에게 받아둡니다. 역자가 작품 본문을 30~100쪽 정도 번역한 뒤 여러 곳에 보냅니다. 미국이나 유럽쪽은 아시아 시장보다 초기 투자비용과 준비 과정이 더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작가와 독점계약을 맺지 않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요. "

경희대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석사)을 공부한 이 상무는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전,1년만 일하겠다고 입사한 회사에서 출판 에이전트를 천직으로 삼게 됐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국내 작가들의 장편소설 5편씩을 15개 언어권으로 번역해 최소 20년 이상 사랑받도록 하겠다는 '5-15-20'이 그것이다.

"등록된 출판 에이전트가 수백 곳인데 문학 수출은 돈이 잘 안되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니까 외면해요. 한류문화에 힘입은 비(非)문학 도서들은 아시아 시장으로 많이 나가는데….젊은이들에게 문학 수출 에이전트가 얼마나 멋진 직업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작가들에게도 해외로 눈을 더 돌리라고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

그는 하나의 문학이 세계 고전의 반열에 올라 세월의 경계 없이 꾸준히 읽히기 위해서는 생산자인 작가 다음으로 에이전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