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공연을 봤습니다.참 좋네요."

서울 화곡동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채모씨(55)는 지난 15일 저녁 여의도 63빌딩에서 대학생 딸과 뮤지컬 공연 ‘판타스틱’을 관람했다.

경쾌한 음악과 배우들의 익살스런 연기에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2003년 시댁 형제들의 빚을 떠안으며 신용불량자가 됐던 채씨는 다리를 저는 불편한 몸으로 파출부 일을 하며 힘겹게 빚을 갚아 왔다.

그런 그도 이날만큼은 현실 세계에서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이날 공연은 채씨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주선했다.

‘도전 함께 하는 내일’이란 이름의 이번 행사에는 신복위가 초청한 400여명의 신용회복자들이 참석했다.

공연에 앞서 이뤄진 특강에서는 역경을 딛고 성공 신화를 쓴 김석봉 석봉토스트 대표와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가 나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먼저 김 대표는 토스트를 파는 노점상에서 전국 300여개에 달하는 프랜차이즈 회사로 키워낸 성공 비법을 공개했다.

무일푼인 그를 믿고 결혼해준 아내가 처녀때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모았던 단돈 200만원을 갖고 1997년 서울 무교동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최고의 노점상을 만들겠다며 복장도 요리사처럼 갖춰 입었다.

돈을 만지던 손으로는 토스트를 만들 수 없어 자율계산대를 만들었다.

비용이 좀더 들더라도 두루마리 휴지 대신 티슈를 준비했다.

새벽 6시부터 11시까지 5시간만 일하며 그만큼 집중했다.

피나는 연습을 통해 양손을 써서 빵굽는 스피드를 높였다.

가장 인상좋은 미소를 만들려고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외국인 관광객 서비스 차원에서 꼭 필요한 20개 문장을 골라 3개 국어로 번역,통째로 외웠다.

김 대표는 “이렇게 하니 3년만에 연매출이 1억원을 넘더라”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더나은 삶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에 이어 연단에 오른 유 교수도 공고를 나온 용접공에서 대학교수가 된 자신의 드라마틱한 이력을 소개하며 강연을 풀어나갔다.

그는 “한때 유흥에 빠져 방황하기도 했고 사고를 당해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며 “그러다 공고 출신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기를 읽고나서부터 ‘나도 할수 있구나’란 생각에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되고’와 ‘대로’가 신조라는 그는 “교수에서 잘려도 용접을 해서 먹고 살면 된다”며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바꾸려는 용기있는 행동만이 마음먹은 대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성표 신복위원장은 “어쩌면 문화 생활이 사치일 수밖에 없는 신용회복자들에게 이번 행사가 작은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