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시장이 업태별로 상위 3사가 주도권을 잡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빅3'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백화점에 이어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편의점 부문에서도 최근 인수 · 합병(M&A) 등을 통해 '3강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유통 전문가들은 규모와 효율성을 갖춘 '빅3' 간 치열한 경쟁으로 소비자 후생과 유통산업의 수준이 향상되는 한편 중소 유통업체와 자영업자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대 유통채널 모두 '대형 3사'로 집중

백화점 부문에선 롯데 · 현대 · 신세계가 외환위기 이후 경쟁적으로 다점포화에 나서면서 2000년대 초반 일찌감치 '빅3' 체제를 구축했다. 이들 3사가 전체 백화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44.5%에서 지난해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최근 롯데가 GS스퀘어백화점을 인수하고 신세계가 충남 천안에 있는 야우리백화점 운영계약을 체결하는 등 '빅3'의 과점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형마트는 3위 롯데마트가 최근 GS마트 14개 점포를 인수하면서 이마트,홈플러스의 '빅2'에서 '빅3'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해 10개 이상의 점포를 새로 열어 연말까지 약 100개점을 확보해 1,2위 못지 않은 구매력과 입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SSM은 2000년대 중반만 해도 GS수퍼마켓이 단연 1위였으나 최근 3~4년 새 롯데슈퍼와 홈플러스익스프레스가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3강 체제로 재편됐다. 이들 3사는 올해도 가맹사업을 통한 점포수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편의점에서도 3위인 롯데 계열 세븐일레븐이 지난달 말 4위 바이더웨이를 인수하면서 '투톱'이던 훼미리마트와 GS25에 바짝 따라붙었다.

◆'빅3 법칙'이 유통시장의 대세(?)

이처럼 4대 유통채널이 모두 대형 3사가 경쟁하는 시장으로 바뀌면서 '빅3 법칙'(the rule of three)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미국 경영학자 잭디시 세스와 라젠드라 시소디어가 1990년대 초 제시한 '빅3 법칙'은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면 결국 상위 3사가 70% 이상을 점유하는 경쟁 구도로 압축된다는 이론.3개 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1~2개 기업만 있는 시장에 비해 독과점 폐해가 적고 경쟁구도가 유지돼 효율성,수익성,고객만족 면에서 경쟁력 있고 안정적이란 논리다.

유통 전문가들은 '빅3 시장'의 경쟁력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한다. 백인수 롯데유통전략연구소장은 "한두 개 업체가 바잉파워 등에서 월등히 앞서가는 것보다 3개 업체가 균형을 이루는 게 업계 발전이나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이라며 "빅3 간 가격 · 상품 · 서비스 경쟁이 가열될수록 소비자들은 그만큼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빅3 법칙'의 근거가 된 미국 자동차업계 '빅3'가 무너졌듯이 '3강 체제'가 안정적인 구도는 아니란 지적이다. 김민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장은 "유통업체들이 바잉 파워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통합되고 대형화하면서 '빅3' 구도가 나타났지만 '3'이란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며 "3위 업체는 입지가 불안하기 때문에 3사 간 안정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국내 유통시장에선 '빅3'로 대표되는 대기업 집중화 현상이 효율성을 앞세워 너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중소 향토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몰락으로 사회적 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태형 기자 toug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