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도만 고개숙인 도요타…美언론 "사죄 아니다"
대규모 리콜(회수 후 무상수리) 사태를 둘러싸고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대한 서방 언론의 비판이 혹독한 수준이다.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절 각도가 깊지 않았다고 시비를 거는가 하면 그의 서툰 영어까지 꼬집고 있다. 이와 관련,일본에선 미국 GM을 제치고 지난해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된 도요타에 대한 집중 견제가 아니냐는 음모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5일 저녁 나고야에서 열린 도요다 사장의 사과 기자회견에 대해 미국의 LA타임스는 "'의례적인 인사(ritualistic bow)'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예절에선 사죄할 때 90도 각도로 허리를 깊이 숙여 길게 절하지만 도요다 사장은 그저 짧고 의례적인 인사에 그쳐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고 지적했다. 도요다 사장은 이날 회견에서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45도 정도 허리를 숙였다가 바로 들었다. 신문은 또 "회견장에서 그는 손을 탁자 위에 올린 채 문서들을 꼭 쥐고 있었다"며 "도요다 사장의 모습은 (사과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와 닮았다"고 썼다.

미국 AP통신도 "도요다 사장은 일본식으로 절했지만 그의 전임자를 포함한 다른 경영자들이 사죄할 때 하듯이 깊은 절은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동양 예절 전문가들에 따르면 도요다 사장의 절은 참회를 의미하는 깊고 긴 절에 상반되는 짧고 형식적인 절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ABC방송 기자는 회견 중 도요다 사장에게 "영어로 답변해 달라"며 질문해 도요다 사장을 진땀 흘리게 했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도요다 사장은 영어로 답변하다가 어려운 표현은 일본어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도요다 사장이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전하고 그가 '서툰 영어(broken English)'로 "도요타 자동차는 안전하지만 우리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 것임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도요다 사장이 30분 만에 회견을 끝내고 일어서려 하자 한 외신기자는 "우리가 30분짜리 회견을 위해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온 줄 아느냐"며 추가 질의 응답을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서방 언론의 '도요타 때리기'에 대한 일본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음모론이다. 도쿄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고미야 히로유키씨(40)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너무 지나치다. 도요타 문제는 미국 경쟁사에 큰 기회가 되기 때문에 일본 때리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니는 야스나가 마사히로씨(24)도 "도요타가 너무 크고 유명한 탓에 쉽사리 (공격) 목표물이 됐다"며 "서방 언론의 과도한 비판으로 도요타의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일본인들은 미국 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렸던 GM의 구조조정에 나서는 시기에 미국의 정치 세력이 '도요타 흠집내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하나는 도요타의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다.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의 주요 신문에선 도요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면서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로 고객 신뢰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도 도요타가 보다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이미아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