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쟁애에 수작업.."인내심.사명감 없이는 불가능"
내년 DMZ서 발굴 착수

"유해발굴사업은 인내심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발굴할 때 굴착기를 쓰는 게 아니잖습니까.행여 시신을 훼손할까 삽으로 파고 또 파서 겨우 찾아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박신한(52) 대령은 6.25전쟁 59주년을 앞둔 24일 전국 산야에 버려진 13만여명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찾는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육군본부에 속했던 잠정 조직에서 2007년 국방부 산하의 영구조직으로 발전하기까지 산파역할을 하는 등 유해발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박 대령이지만 유해 한 구를 찾아내는 작업이 모래알 고르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6.25전쟁으로 국군 13만7천899명이 전사했고 2만4천495명이 실종됐다.

전사자 가운데 60%인 7만8천여명이 남한지역에, 30%인 3만9천여명은 북한지역에 각각 묻혀 있다.

나머지 10%인 1만3천여명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원혼을 달래고 있다.

2000년부터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발굴작업을 통해 국군 전사자 유해 3천9구가 수습됐다.

이는 13만여명의 2.3%에 불과하다.

이처럼 유해발굴이 더딘 것은 전사자 매장기록이 거의 없어 지역 주민과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에 매장됐다는 증언이 나오면 해당지역을 삽으로 일일이 파내야 한다.

굴착기를 동원하면 자칫 유해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할 수 밖에 없다.

개발에 따른 지형변화와 격전지 현장의 훼손도 장애요인이다.

특히 직계 유가족의 사망으로 전사자 신원 확인에 필요한 DNA 시료 채취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발굴된 3천9구의 유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그나마 46명 뿐이다.

신원 확인 작업을 서두르기 위해 유가족 채혈을 하고 있는데 9천247명이 피를 뽑았다.

채혈된 혈액의 유전자(DNA)와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를 대조해 일치하면 신원이 확인되는 것이다.

박 대령은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이 유해발굴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만약 이 기간에 국가사회적인 노력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수많은 호국의 얼을 땅속에 영원히 묻어놓고 지내는 부끄러운 국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령들을 조국의 품에 모시는 일은 6.25세대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세대가 반드시 매듭지어야 하고 후대에 이 어려운 과업을 넘겨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건립된 유해발굴감식단 청사에는 디지털 X-레이 촬영기, 유실된 유해를 복원할 수 있는 3차원 스캐너, 더욱 정확한 연령 추정을 위한 실체현미경, 뼈 건조기, 초음파 세척기 등의 첨단장비가 갖춰져 있다.

국방부는 6.25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DMZ지역에서 유해 발굴작업을 펼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사와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

DMZ 출입 승인권한은 유엔사에 있고, 총구를 겨누는 북한군과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려면 사전 통고된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해를 단순히 수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유해의 상태를 보전하면서 정확히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지뢰 제거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급선무"라며 "이런 문제점이 해결되면 내년부터 본격 발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MZ 지역은 인위적인 훼손이 적은 곳"이라며 "전쟁 당시 DMZ에서의 전투 참전자와 60~70년대 이 지역 근무자들의 제보가 유해발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군사편찬연구소와 공동으로 남북한 지역의 유해소재 종합지도를 작성하고 있으며 올해 남한지역과 DMZ지역에 이어 2010년에는 북한지역의 유해매장지에 대한 지도가 발간될 예정이다.

유해지도는 사단별로 진행하고 있는 유해탐사 자료를 기초로 6.25전사(戰史)와 참전자 증언, 현장답사 등을 통해 국군과 미군의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지도 위에 표시하고 해당 지점에 대한 지형 설명 등을 넣어 책자형식으로 발간된다.

박 대령은 "전국의 산야에 산재한 전사자 유해의 정확한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보가 필요하다"며 "유해와 유류품을 발견하면 신고하는 참여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