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퇴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석 달 만인 12일 종료됐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하는 등 이번 게이트의 발단이 된 세종증권 매각 비리 수사 시점부터 따지면 206일 만이다.

대검 중수부는 작년 11월19일 세종증권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와 후원자인 박 전 회장, 고교동창 정화삼씨 등 12명을 전격 구속기소하고 한달 만인 12월22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올 2월 검찰 인사에 따라 새로 구성된 중수부는 전국에서 `특수통 검사' 8명을 수혈하는 등 전력을 보강, `게이트'를 터뜨리기 위한 물밑 확인 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관련된 3조5천억원 규모의 계좌 4천700여개와 회사전표, 통화내역을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박 전 회장이 언제 누구와 만났는지 기록된 여비서의 다이어리를 토대로 금품수수 의혹이 있는 인사를 압축했다.

또 세 딸을 출국금지하고 외아들을 불러 조사하는 등 박 전 회장의 입을 열기 위해 `압박카드'를 쓰기도 했다.

3월17일 이정욱 전 해양수산개발원장 체포를 시작으로 본격 수사의 신호탄을 쏜 검찰은 불과 보름 사이 이 전 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장인태 옛 행정자치부 차관, 박정규 전 민정수석,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 6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 이번 사건의 중대성과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부각하려 금품수수 액수가 크고 증거가 비교적 확실한 피의자를 먼저 수사하면서 편파수사 시비를 없애기 위해 옛 여권과 현 여권 인사의 숫자를 맞추기도 했다.

검찰의 속도전에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고 `박연차 리스트'가 떠돌면서 부산·경남(PK) 지자체장과 판ㆍ검사, 경찰, 국가정보원의 고위 관계자 다수가 `연차 수당'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 대상자가 70명에 달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검찰 수사는 3월 말 노 전 대통령 측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건네받았다는 의혹이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서 노 전 대통령 쪽으로 급선회했다.

검찰은 4월 정ㆍ관계 및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연루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5월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할 계획이었지만 너무 빨리 노 전 대통령 의혹이 부각돼 바람에 내사가 덜 된 상태에서 순서를 뒤집은 것.
검찰은 4월7일 노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던 정상문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았다며 체포했고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정 전 비서관이 아니라 집(아내)에서 받아썼다"는 글을 게시하면서 게이트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100만 달러 수수혐의 공범으로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같은날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송금받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체포하는 등 전면전에 돌입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천만원을 빼돌린 사실까지 추가로 밝혀내 4월21일 구속했으며 그 사이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을 불러 조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증거다", "박 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라며 홈페이지에 수차례 해명 또는 반박성 글을 올려 장외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4월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임 총장은 5월 4∼6일께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가닥을 잡았으나 40만 달러 추가 수수 혐의가 드러나는 바람에 사법처리를 보름가량 미뤘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달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임 총장은 곧바로 사직서를 냈지만 수사 매듭을 이유로 반려됐다.

영결식까지 수사를 중단했던 검찰은 천신일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를 재개하고 대검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수사 당위성이 손상되면 안된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그러나 천 회장의 영장마저 기각되자 임 총장은 다시 사직서를 내고 지난 5일 27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났으며 마지막 동력까지 끊긴 중수부는 신속히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