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삼성그룹은 이로써 13년 동안 `집요하게' 발목을 잡았던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 고발 및 검찰 수사 = `에버랜드 사건'은 1996년 12월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재용씨가 에버랜드 CB를 주당 7천700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에버랜드는 당시 99억5천459만원 상당의 CB를 발행했고,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전ㆍ현직 임원들로 구성된 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하자 재용씨 등 4명에게 포기물량을 배정했다.

재용씨는 이후 CB를 주식으로 전환,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 순환출자 구조인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사실상 확보한 셈이었다.

이에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학교수 43명은 2000년 6월 "재용씨에게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CB를 발행한 것은 편법 증여"라며 이 전 회장 등 3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3년간 수사를 벌여 공소시효가 단 하루 남은 2003년 12월1일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우선 허태학ㆍ박노빈 에버랜드 전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은 기소 전까지 주임검사만 4∼5명이 바뀌었고, 피고발인과 에버랜드 실무진 등 50여명이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수사 기록도 1만 쪽에 달했다.

◇ 삼성특검 출범…이건희 전 회장 기소 = 이 사건은 2007년 10월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계좌에 삼성의 비자금이 있다는 내용을 폭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 변호사는 수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각종 의혹을 제기했고, 이는 특검 수사를 이끌어냈다.

조준웅 특검팀은 지난해 1월10일 출범해 이 전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과 자택, 그룹 전략기획실이 있는 삼성전자 본관 등을 압수수색하고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등 핵심 경영진을 소환했다.

특검은 이 전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와 아들 재용씨를 조사한 데 이어 특검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던 4월4일과 11일 이 전 회장까지 소환했다.

특검팀은 같은달 17일 배임ㆍ조세포탈 등 혐의로 이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99일간의 장정을 마쳤다.

◇ 판결 엇갈린 재판 = 삼성 재판은 검찰이 애초 기소한 `허태학ㆍ박노빈 전 사장 사건'과 특검이 기소한 `이 전 회장 사건'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허ㆍ박 전 사장 사건'은 특검이 시작되기 전인 2007년 5월 이미 항소심 재판까지 끝냈지만 이 전 회장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기 기다렸다.

에버랜드 CB를 저가 발행한 행위를 놓고 두 사건 하급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허ㆍ박 전 사장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적정 주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적정주가가 최소 1만4천825원은 된다고 보고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 사건에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1심은 주주들이 스스로 실권, 배임죄를 물을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항소심은 주주배정 방식으로 발행되건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되건 회사에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특검법에 따라 1심 재판은 3개월, 2심 재판은 2개월 안에 끝마쳤고, 특검팀은 작년 10월16일 이 사건을 상고했다.

대법원은 2개월 내에 선고하도록 한 특검법을 지키지 못하고 반년 이상 심리를 벌인 끝에 결국 무죄로 판단, 이날 선고함으로써 13년 동안 이어진 지루한 공방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에버랜드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에버랜드 측 변론을 맡았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초기 수사에 관여했던 안대희 대법관은 재판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