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대학생 L씨(28)는 한 통신 관련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당황스런 일을 겪었다. 회사 관계자가 고객 1000여명의 전화번호 이름 등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명단을 나눠주며 텔레마케팅을 지시한 것.심지어 회사는 정부의 불시 조사에 걸릴 경우에 대비해 둘러대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그는 "회사에서 정식채용 때 가산점을 줄 것처럼 얘기해 불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렇지만 얼마 후 있었던 취업 전형에서 이 회사 인턴으로 일했던 사람 대부분은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대학생 J씨(26)는 허드렛일에 질려 인턴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 케이스다.

그는 2007년 시민단체 소개로 국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원래 예정됐던 4개월간의 인턴생활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대학 때 경험하지 못했던 국회의원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며 정치 실무를 배워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는데,타이핑 복사 등 단순업무만 줄곧 시켜 좌절을 맛보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각한 취업난으로 인턴 경험을 희망하는 구직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실한 인턴십 프로그램 때문에 인턴과 조직 모두 낭패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청년인턴제와 관련,"커피를 끓여오게 하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인턴십 프로그램이 부실하게 운영될 경우 △취업 희망자들은 더 좋은 정규직 채용 기회를 잃을 수 있고 △기업들은 자사에 실망한 인턴사원들을 중심으로 안 좋은 소문이 날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 타격이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황선길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장은 "사내 인사 담당자들이 정규직과 인턴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게 인턴십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라며 "인턴제를 제대로 운영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신입사원 채용과 교육에 드는 시간 및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가욋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조언했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