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30분 영국 런던.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성이 등장한다. "우리 사무실은 런던에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상사는 지금 프랑스에 있죠.그는 2주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프랑스 기업의 인사관리 관계자들로부터 새로운 기술과 이론을 배우는 중입니다. " 설명이 끝나는 순간 굵직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 덕분에 유럽 지역에서 가장 좋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보다 많은 취업 기회가 생깁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Leonardo da Vinci Programme)'을 선전하는 30초짜리 TV 광고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연합(EU)이 유럽 기업들의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상호 공유토록하기 위해 만들었다. 직원교육 시스템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직원 교육을 서로 의뢰함으로써 창의성을 최대한 북돋우자는 취지에서다. 창조적 인재를 기르기위해선 국경조차 무의미해지고 있는 셈이다.


헝가리 도로개발공사의 고속도로 포장 기술자인 루크 에머튼.그는 지난 1년간 영국 도로개발공사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그가 배워온 신기술은 탄소섬유 보강 기법.탄소강화 섬유가 가지는 뛰어난 강도의 특성을 취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법이다. 에머튼은 "영국의 신기술 개발팀과 함께 일하며 교육을 받았다"며 "기술도 기술이지만 선진적인 기업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사설 경비업체 '팰크' 직원인 헨드릭 한센은 최근 승진했다. 영국의 공공 소방서인 '스로스피어'에서 파견근무를 마친 직후다. 경비업이 주력 사업인 팰크는 사업 다양화를 위해 소방업에도 진출키로 결정했다. 이에 팰크와 스로스피어는 1년에 12명씩 인력을 맞교환하고 있다. 팰크 직원 12명은 1년간 스로스피어에서 근무하며 화재 진압 기술을 배운다. 같은 기간 스로스피어 직원 12명은 팰크에서 민간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화재방지 사업에 진출코자 했던 팰크와 민간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 했던 스로스피어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은 인력 교환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술력이 부족한 분야의 직원들이 모여 직접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기도 한다. 지난 6월 유럽지역에서 1만5000명이 모인 발표회 현장.스코틀랜드 농업대학 팀은 '농업 마케팅'교재를 발표했다. 영국 그리스 체코 터키 헝가리 이탈리아 등 6개국의 농업 종사자들이 지난 2년간 공동 개발한 교재다. 이 교재는 마케팅에 무지한 농부와 농업 관련 종사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유럽 9개국의 철강 산업 종사자들도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고하기 위한 교재를 개발했다. 영국 카디프 대학의 스트라우드 사회과학대학장은 "9개국의 철강 기업들의 네트워킹 자체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재 개발을 위해 뭉쳤던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며 필요할 때마다 업무상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기업과 긴밀히 연계된 직업학교들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에 동참한다. 영국의 호텔전문 학교인 앵거스 대학은 스페인과 체코의 호텔에 16명의 학생을 2주씩 보낸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주방일과 호텔 서빙 등의 일을 하며 배운다. 체코를 방문했던 한 학생은 "매일 주방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조리법으로 체코 요리를 만드는가를 보는 건 아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최대 직업 학교인 헬테크 역시 한 해 200명의 학생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 등에 파견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유럽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을 통한 노동인력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EU는 역내 기업과 학교 등의 인적자원 교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프로그램을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은 31개 참여 국가에 설치된 사무국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각 사무국은 다른 나라의 사무국과 정보를 교환해 적합한 회사를 알선한다. 수수료는 전혀 없다. 오히려 사무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이러다보니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기업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국경을 넘어간 사람은 무려 9만여명. 200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핀란드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그램 사무국인 CIMO의 미카 샤리넨 대표는 "전체 핀란드 기업의 절반 정도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며 "이 중에는 노키아와 세계 4위 엘리베이터 기업인 코네처럼 잘 알려진 기업들도 다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사내 교육 내용을 상호 인증해 주는 인증 교환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며 "외국에서 얻은 인증이 자국에서 인정되면 이 프로그램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식이라면 경쟁사에 직원을 위탁교육시키는 '적과의 동침'이 일반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헬싱키(핀란드)=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