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 일로..물가.

일자리 난망

정부가 제시한 하반기 경제전망치가 한 달도 안돼 줄줄이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고유가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여파로 세계 경기가 냉각되면서 경제전망의 전제조건으로 가정한 대외 변수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물가, 일자리, 경상수지 등 각종 지표가 정부 전망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하반기의 첫 달인 7월에 전망치의 달성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하향 곡선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어 좀 더 현실성 있는 목표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벌써 나오고 있다.

◇ 경제전망 전제조건 급변

21일 정부당국과 금융시장에 따르면 고유가와 서브프라임 사태의 영향으로 미국 등 세계 주요국들의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기존에 제시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하반기 경제 전망을 하면서 전제조건으로 미국 경제성장률 0.5%, 세계 경제성장률 3.7%, 두바이유 배럴당 110달러를 내걸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성장이 이에 미치지 못하거나 고유가 국면이 빠르게 해소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전망이 다시 한번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중대 변수로 작용하는 미국의 경우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모기지 부실이 금융기관의 손실로 이어지면서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긴급구제책을 내놨지만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더 번지고 있다.

경기하강 위험은 커지는 가운데 고유가 등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높아지고 미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도 둔화되는 등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년 만에 11,000선이 무너지는 등 경제 심리를 더욱 냉각시키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최근 "미 경제가 지속적인 신용경색과 더불어 실업률 상승과 주택시장 문제 등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해 "성장의 위험이 다소 감소했다"고 했던 지난달의 입장을 뒤집었다.

그는 "경제성장 전망에 대한 심각한 하향 리스크(위험)가 있고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세는 최근 다소 진정되는 듯한 모습이지만 정부가 제시한 하반기 배럴당 120달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구기관들은 국제유가가 150달러가 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대 후반까지 추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물가전망 적중 난망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그동안 인위적으로 눌러뒀던 변수들이 부각되면서 물가도 기대치를 이탈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로 4.5% 내외를 제시했는데 벌써부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요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기료와 가스요금인데 일단 동결을 전제로 해서 올해 하반기 물가전망을 냈다"며 "따라서 하반기에 공공요금이 오르면 실제 물가가 전망치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도시가스 요금의 경우 8월, 9월, 11월 등 3개월에 걸쳐 총 30~50% 올리고 전기요금은 8월 중에 5% 정도, 내년 하반기에 한차례 더 올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가스와 전기요금 인상은 다른 공공요금에 영향을 미치고 이후 전반적인 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가스와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한은은 물가전망치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는 입장이 됐다는 의미다.

여기에 각 지자체들이 택시.버스요금까지 인상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여타 품목의 가격에도 '도미노 인상'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미 5.5%로 정부의 연간 전망치인 4.5% 내외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소비자물가는 1~3월 중 3%대에서 머물다 4~5월 중 4%로 오른 뒤 6월에는 5% 중반까지 급등했다.

◇ 일자리.경상수지도 '비상등'

정부가 하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밝힌 일자리 목표치(20만명 내외)도 달성이 불투명하다.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업자는 14만7천명으로 4개월 연속 20만명을 밑돌았다.

이는 5월의 18만1천명에 비해 3만4천명 감소한 것으로 2005년 2월(8만명) 이후 3년4개월만에 최저치다.

신규 취업자 수는 3월 18만4천명으로 10만 명대로 떨어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정부는 6월 취업자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을 노동시장의 제도적 요인 및 일시적인 변수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일자리 목표치를 아직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고용이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며 정부의 고용 목표치가 달성될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취업자 증가폭의 감소는 현재 내수산업이 나쁘다는 뜻인 동시에 소비 감소로 경기가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의미"라며 "고용 부분이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상당 기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전망치(100억 달러 적자)도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 들어 5월까지 적자는 71억 7천만 달러로 이미 100억 달러에 가깝게 다가섰다.

지난해 12월 이후 월별 기준으로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고유가 기조도 크게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

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최근 경기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각종 전망치를 하향조정해야 할 만한 상황이 되고 있다"며 "정부가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수출 등 특정 섹터 위주로 성장을 촉진한다는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