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IB(투자은행)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 경제에 기여할 방법은 좋은 해외 기업을 국내 기업에 중매하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일해 왔습니다."

작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LG생활건강의 코카콜라보틀링 인수에 이어 최근 동원그룹의 미국 최대 참치회사인 '스타키스트' 인수를 자문한 크레디트스위스코리아 이천기 대표(41)는 국가 간 인수ㆍ합병(크로스보더 M&A)의 개척자로 꼽힌다.

2002년 국내 최연소 외국계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이 대표는 국내 최초 공기업 민영화 프로젝트였던 한국담배인삼공사 민영화를 비롯해 월마트의 월마트코리아 매각,현대상선의 자동차운송사업부 분리 등 굵직굵직한 크로스보더 M&A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M&A 중개 시장에서 발군의 실적을 내고 있는 데 대해 "외국계 IB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다른 글로벌 IB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휘청거리는 사이 크레디트스위스가 포진한 각국 지점 대표들과 은행 부문의 리서치 인력들로부터 매물로 나온 기업에 관한 정보를 매일 얻고,그 회사와 시너지 효과가 큰 국내 기업을 찾아 나선 결과라는 얘기다.

그는 매물로 나온 회사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스타키스트' M&A 건에서도 사모아의 현지 공장을 수차례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현금이 두둑한 국내 기업 상당수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신용 위기로 선진국 기업 매물이 싼 값에 나오기 시작했다"며 "지금이 글로벌 기업에 대한 M&A 적기"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시장 규모의 한계에 부닥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많은 자본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그 시장에서 판매망과 브랜드를 갖추고 있는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인수한다면 이러한 비용을 대거 줄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동원이 인수한 스타키스트는 델몬트사의 수산 사업부문으로 미국 참치 시장의 37%를 점유하고 있는 데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맥시코 등 북중미에서 인지도가 높은 전통 브랜드라고 이 대표는 전했다.

이 대표는 중국과 대만 등에서도 해외 기업 인수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글로벌 M&A 시장 규모가 작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지만,아시아 신흥시장에서는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

현재 10개의 크로스보더 M&A 건을 국내 기업과 진행 중이라고 밝힌 그는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과 대만에 좋은 기업을 내주면 결국 국가경제에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해외 직접 진출보다는 M&A를 통해 글로벌화를 이루는 게 쉬운 방법인 만큼 CEO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인 이 대표는 뉴욕연방준비제도이사회,골드만삭스 등을 거쳤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