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3일.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25층에 위치한 신한은행 강남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에 모인 4명의 여성 금융인들에게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있었다.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속 장소로 나온 것.고유가 시대를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의 단면이었다.적게는 7년,많게는 25년을 금융계에서 근무한 이들은 한편으로는 남성들을 압도하는 뛰어난 프로페셔널이기도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을 책임지는 가정주부이기도 하다.

재테크 시장이나 거시경제 전망과 같은 골치 아픈 얘기가 아닌,살림살이를 주제로 한 대화가 시작되자 첫 만남이어서 자칫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풀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식사를 겸해 2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 모임에서는 직장인 엄마들이 고물가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현장 토크’가 쏟아져 나왔다.

▲왕미화 신한은행 성산동지점장=직장생활 하느라 바빠서 언론을 통해 "물가가 많이 뛰었다"는 소식만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있었는데,최근에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보고는 물가 부담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리에 1만2000원 하던 튀김닭 값이 1만4000원으로 뛰었더군요.

동네 식당에서 사먹는 삼겹살 값도 많이 올랐어요.

연초만 해도 2만원어치면 우리집 세 식구가 충분히 먹었는데 지금은 3만원어치 이상을 사야 합니다.

▲이현진 미래에셋증권 AM팀장=저는 하나 있는 딸이 31개월밖에 안돼 친정 어머니께서 봐주고 계세요.

그래서 살림살이에는 영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주 전에 삼겹살용 돼지고기 한 근을 사러 갔다가 물가가 올랐다는 얘기를 실감할 수 있었네요.

동네 할인점에서 1만원이 넘었더군요.

돼지고기 한 근 사는 데 1만원 이상을 들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또 애 목걸이를 사주려고 금은방에 갔다가 14K짜리 목걸이가 12만~18만원 수준인 것을 보고 고물가를 실감했습니다.

5만~6만원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제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던 건가요.

▲임찬희 기업은행 여의도한국증권지점 PB팀장=거의 모든 지출은 신용카드를 통해 해결하고 있어요.

매달 카드 결제 대금을 꼼꼼하게 분석해 쓸데 없는 지출을 막기 위함인데,요즘은 결제일이 다가오는 게 무섭더군요.

물가가 많이 뛰어서 생활비 지출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윤선애 삼성생명 강북지역단 성북지점 파이낸셜플래너(FP)=아무래도 물가 상승을 현장에서 가장 생생하게 실감하는 게 차에 기름 넣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제 경우 영업활동 때문에 구입 당시 휘발유 차량보다 유지비가 훨씬 적게 들어갔던 경유차를 몰고 있는데 최근 몇 개월 새 운행 비용이 2배로 뛴 것 같아요.

▲임 팀장=집이 평촌입니다.

직장이 여의도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쓰고 있습니다만,요즘 들어 차를 집에 두고 나오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어난 것 같아요.

지난달 30일을 예로 들면 월요일이라 평소 같았으면 출ㆍ퇴근하는 데 각각 1시간20분씩은 걸렸을 텐데 15~20분 정도 덜 걸렸어요.

▲이 팀장=저는 증권사 영업점에 있다 보니 다른 직장인보다 출근시간이 이른 편입니다.

영등포에서 서초동까지 매일 자가용으로 출ㆍ퇴근을 하는데,앞으로 기름값이 지금보다 20%만 더 오르면 대중교통으로 출ㆍ퇴근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윤 FP=요즘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드시나요.

저희 집은 작년 하반기에는 한 달 생활비가 교육비를 빼고 250만원 정도였는데,올 들어서는 최근 1~2개월 새 한 달에 70만~80만원 정도 지출이 늘어난 것 같아요.

▲왕 지점장=저희 집과 비슷하네요.

작년 하반기에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썼는데,올해는 50만원 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임 팀장=지출이 늘어난 것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비슷하겠지요.

저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씀씀이가 늘었을까' 궁금해서 가만이 따져보니 아파트 관리비가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인건비,공동 전기요금,공동 수도료 같은 공동 비용이 많이 증가했더군요.

▲이 팀장=저는 사정이 좀 다른데 아직 부담스러울 정도로 생활비가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아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세금은 정말 부담스러운 수준이에요.

앞으로 공공요금이 오를 거라고 하던데 정부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왕 지점장=이 팀장께서는 신세대 주부이신데 고물가 시대를 헤쳐 나가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요즘 젊은 부부들은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는지….

▲이 팀장=신세대라니요,2000년에 결혼했으니까 이제 결혼 10년차가 다 돼가는데요.
하하.금융계에서만 직장생활 7년차에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또래들에 비해 형편은 좀 풍족한 것 같습니다.
남편이랑 합치면 연수입이 1억원은 넘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집 같은 경우는 제가 증권사에 있다 보니 총 자산 가운데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이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도 되고요.
그래서 요즘은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고물가가 이슈가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통신비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쯤 전 인터넷 집전화 휴대폰까지 통신사를 싹 다 바꾸면서 제게 맞는 서비스 요금을 적용받다 보니 통신비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더군요.

예를 들어 인터넷은 매달 3만원이 나가던 게 2만원으로 줄어들었고….두 번째는 외식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토ㆍ일요일에 적어도 두 번 이상 외식하던 걸 한 번으로 줄였더니 한 달이면 20만원은 절약할 수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올 여름에는 에어컨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윤 FP=역시 신세대 부부라 다르시네요.
매달 정해진 임금을 받으시는 나머지 세 분과 달리 저는 신분이 개인사업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을 위해 매일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기름값을 아끼는 게 가장 큰 관건입니다.

일단 요즘은 주유소에서 "얼마치를 넣어 달라"고 하지 않고 "몇ℓ를 채워 달라"는 식으로 주문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기름값을 조금이라도 더 아낄 수 있습니다.

▲왕 지점장=저는 남들은 잘 안하는 걸 하나 하는 게 있는데,그게 뭐냐 하면 냉장고 청소를 자주 하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나 신경을 쓰고 있죠.냉장고 청소를 자주 하지 않으면 냉장고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얼마 전에 구입해 놓은 식재료를 깜빡하고 다시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보관 중인 식재료에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해 중복 구매를 하지 않도록 하고 식재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구입을 자제하는 것도 고물가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윤 FP=지난해 4분기를 지나면서부터 재테크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중국 펀드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요.
요즘 재테크는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신지요.

▲임 팀장=아무래도 작년보다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자금 운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소형 아파트를 한 채 보유 중인데,시장 상황이 워낙 안좋아 조만간 매도할 계획입니다.

▲이 팀장=저희 집은 애가 아직 어리고 앞으로 3년 정도는 목돈이 필요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중ㆍ장기 계획을 잡아놓고 재테크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올 들어 주식시장이 안좋아져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에요.
주로 펀드나 변액보험 같은 실적배당 상품에 투자해 놨기 때문이에요.

2~3년간 길게 보고 넣다 보니 고점 대비 수익률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은행 예금보다는 수익률이 좋은 편입니다.

올 들어서 바뀐 부분이 있다면 작년까지는 거치식으로 거액을 펀드에 넣어두는 편이었는데,요즘은 적립식 펀드의 비중을 많이 늘렸습니다.

작년에 비해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요즘 주가가 약세여서 적립식 투자는 2배 수준으로 늘리고 목돈은 원금 보장이 되는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넣어두고 있지요.

정리=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