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미리 작성한 유언장 효력 첫 인정

미리 작성된 유언장이라 해도 유언자가 의식이 명확한 상태에서 일일이 확인을 했다면 효력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미리 작성된 유언장의 효력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경기도 일대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이모씨의 자녀들은 2004년 9월 이씨가 사망하자 재산 다툼이 일었다.

이씨가 사망한 뒤 경기도 평택에 있던 부동산 중 3/11은 이씨 아내에게 나머지 8/11 중 각 2/11는 장남과 세 딸에게 상속됐는데, 장남이 아버지 유언증서를 근거로 누나와 여동생들에게 상속된 부동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씨는 사망하기 8개월 전 자신의 집에서 변호사를 공증인으로 하고, 나머지 두 명의 지인을 증인으로 참석시킨 가운데 아들에게 이 부동산을 남긴다는 유언공증증서를 작성했다.

방식은 이랬다.

이씨가 의식은 명료해 언어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터라 변호사는 미리 공증할 내용을 작성해 뒀다가 다음날 이씨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2명의 증인이 참석한 상태에서 이씨에게 유증할 재산이 어떤 것인지 물어서 대답을 듣고 유언공증증서의 내용을 읽어준 후 이씨가 이의가 없다고 하자 서명날인토록 했다.

이씨 장남은 이렇게 작성된 아버지 유언증서로 누나와 여동생들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누나와 여동생들은 공증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민법 제1068조에 따라 유언자가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口授ㆍ말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해야 하고, 공증인은 이를 적어서 유언자와 증인에게 낭독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맞섰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이씨의 장남이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에서 이씨의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는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명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뒤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해야 하는데, 여기서 `유언취지의 구수'는 말로써 유언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공증인이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취지를 작성하고 그 서면에 따라 그에게 질문을 해 진의를 확인한 다음 필기된 서면을 낭독해 줬고, 그가 유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할 의사식별 능력이 있고 유언의 내용이나 경위로 봐서 유언 자체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유언취지의 구수' 요건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