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선거일은 2008년 11월4일.아직 1년5개월이나 남았지만 선거전은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후보자별 지지도가 정기적으로 발표되는가 하면 유력 인사들의 특정 후보 공개 지지도 줄을 잇는다.

조기 과열되고 있는 선거전의 한가운데 대선자금 모금이 있다.

돈을 많이 모으는 후보가 결국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게 대부분 선거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대선자금을 많이 모았다는 것은 지지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또 돈이 많아야 미디어시대 선거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다름아닌 '돈 전쟁'이다.



"우리는 내년 사상 처음으로 빌리언(10억)달러 대통령을 뽑게 될 것이다." 작년 12월 당시 마이클 토너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위원장은 이처럼 예견했다.

다름아닌 2008년 본선 선거 비용만 1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란 얘기다.

미 대선자금은 1992년 1억9850만달러에서 2000년엔 3억5170만달러로 불어났다.

2004년엔 7억150만달러에 달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어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본선 비용이다.

각 당의 후보 선출을 위한 예선(전당대회) 비용까지 감안하면 총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2004년 선거에 사용된 총비용은 10억2000만달러.이번엔 2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엄청난 비용 대부분을 후보자들이 충당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 있기는 하다.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도시의 지원금도 있다.

그러나 60% 이상은 자신의 이름과 비전을 내세워 유권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지출해야 한다.

토너 전 위원장은 "민주·공화 양당의 최종 주자로 선정될 후보는 5억달러 정도의 선거자금을 모금해야 할 것"이라며 "각 당 경선에 나서려는 후보들도 2007년 말까지 1억달러 정도는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는 모아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얘기다.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일찌감치 선거전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는다.

1928년 이후 처음이다.

'현직 프리미엄'이 없는 만큼 '대권'을 꿈꾸는 후보에겐 절호의 찬스다.

그러다보니 대선은 작년부터 조기 과열됐다.

조기 과열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한다.

선거전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선거전문가들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을 꾸려야 한다.

이들을 '영입'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다.

미디어 선거 시대는 돈이 없으면 아예 이름도 알려지지 않게 돼 있다.

케이블 TV는 물론 공중파 TV에 자주 얼굴을 알려야 인지도가 올라간다.

민주당의 존 에드워즈 후보와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가 벌써부터 TV에 상업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도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20여개 주의 예비선거가 내년 2월5일 화요일 동시에 치러진다는 점도 돈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요인이다.

같은 날 동시에 예비선거가 치러지다보니 날짜별 차이에 맞춘 선거 유세를 할 수 없다.

이에 대응하려면 TV 등 비싼 미디어 광고를 동시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게 최선이다.

'쓰나미 화요일'이라 불리는 내년 2월5일에 대비하려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축적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지난 1분기 중 대선자금 모금액이 공개된 지난 4월 초.미국은 거의 뒤집어지다시피 했다.

'신성'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주,민주)이 2500만달러를 모금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2600만달러)을 바짝 따라붙은 것.중앙정계에 입문한 지 고작 2년.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런 성적표를 내놓자 선거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바마의 이런 위력은 지지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4월30일 여론조사기관인 라스무센과 NBC방송이 공동 조사한 결과 오바마의 지지도는 32%로 힐러리(30%)를 사상 처음으로 앞서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그 후 조사기관에 따라 다시 뒤집어지긴 했지만.

정치자금 모금 순위와 지지도 순위는 민주 공화당 모두 거의 일치했다.

모금액과 지지도가 비례하는 것은 대선자금 모금 방법 때문이다.

미국에선 외국인과 기업 노조 등 이익단체 등은 대선자금을 낼 수 없게 돼 있다.

기업이나 노조단체들이 정당에 거액을 기부해 간접적으로 후보를 지원하던 이른바 '소프트머니(soft money)'도 2004년 선거 때부터 사실상 금지됐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돈을 내느냐가 모금 규모를 결정한다.

10만명으로부터 2500만달러를 모은 오바마가 5만명으로부터 2600만달러를 모금한 힐러리보다 "지지층이 훨씬 넓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3월22일 오후 뉴욕 플러싱의 한인식당인 대동면옥.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한인.클린턴은 싫은 내색 없이 30여분에 걸쳐 참석자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클린턴이 한인타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부인인 힐러리의 대선자금 모금을 위해서다.

그는 이날 저녁 가뿐히 10만달러 이상의 대선자금을 모아 갔다.

이처럼 후보나 선거운동원들이 각종 모임을 찾아다니는 것은 지지를 호소하는 것 외에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사실상 개인만 선거자금을 기부할 수 있는 선거법상 각종 모임에 얼굴을 비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현재 1인당 기부한도는 각 당 예비선거 2300달러,본선거 2300달러로 총 4600달러.그러다보니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야 모금액을 늘릴 수 있다.

그렇지만 후보 혼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그래서 두고 있는 게 선거운동원 외에 이른바 '파워브로커'다.

브로커들은 '후원회장' 등의 이름으로 특정 후보를 위한 모금을 담당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떠오르는 신종 직업'이라는 점.후보들은 파워브로커들이 특정액 이상을 모아올 경우 일정액의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는다.

10만달러 이상을 모으면 20~30%를 수수료로 주는 경우가 많다.

각 대선 후보들은 지지자들과의 직접 접촉 외에 우편과 인터넷을 통해서도 기부금을 접수한다.

최근 들어선 1조4000만달러의 자산을 가진 헤지펀드들이 적극적으로 기부에 나서고 있다.

미국엔 선거자금의 상한선이 없다.

많이 모으면 얼마든지 많이 쓸 수 있다.

대신 돈의 모금과 지출 과정은 엄격하게 검증되고 통제된다.

후보의 선거운동위원회 등이 선거자금을 관리한다.

이들은 대선자금 모금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분기별로 선거자금 모금 및 지출 내역을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한다.

선관위는 자금의 입출금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될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 미국 선거법상 대선자금 기부 조건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라야 한다(외국인은 불가)

▷타인 명의로 기부하거나 타인에게 명의를 빌려줄 수 없다

▷현금으로는 100달러 이상 기부할 수 없다

▷18세 이상이라야 기부할 수 있다

▷기업,노조 등 이익단체,연방정부의 계약자 등은 기부할 수 없다

▷법인 명의의 신용카드나 법인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기부금이 200달러를 넘을 경우 고용주 등을 밝혀야 한다

▷대선자금 1인당 기부한도는 예비선거 2300달러,본선거 2300달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