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의 24일 기자간담회는 최종 계약(SPA) 체결과 대금지급 시기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금지급 시기를 늦춰 감사원과 검찰 조사 및 여론 추이를 관찰할 시간을 확보하되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계약은 그대로 관철한다는 의지를 론스타에 전달한 것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미뤄볼 때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일정은 다소 지연될 것으로 보이지만 계약 자체가 원천 무효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 최종계약과 대금지급은 '별개'

국민은행 김기홍 수석부행장은 이날 "정밀실사 후 최종계약(SPA)을 체결하더라도 감사원과 검찰 조사가 종결된 이후에 대금지급을 완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최종계약 체결 후라도 론스타의 범법행위가 드러나 법적 지위에 문제가 생긴다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은행과 론스타의 이같은 결정은 최근 검찰과 감사원 조사 등에서 비롯된 한국사회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부행장은 또 "가치판단에 필요한 정밀실사에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어 실사 기간을 3주 더 연장하겠다"며 "이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즉 실사 연장은 말 그대로 과정상 필요해서 발생한 일인 반면 대금지급 시기에 대한 조건 추가는 여론과 관계기관의 조사를 반영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는 이달 20일로 정밀실사 및 배타적 협상기간을 끝낸 국민은행이 론스타와 여론을 동시에 감안한 선택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기본적으로 최종계약을 체결할 의지가 충분함을 보이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 인수 결렬 가능성 여전히 '희박'

국민은행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자로서 법적인 자격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을 무효화 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현재로선 이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이 원천무효될 가능성이 작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조작하는 등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이 부분에 대해 법원 및 금융감독 당국이 계약 원천무효를 선언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가는 론스타가 불법행위에 일부 연루됐다 하더라고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전면 무효화하고 주식을 몰수하는 것은 국제관례상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

현재 감사원이 2003년 매각과정에서 론스타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렇다할 근거를 밝혀내지 못한 데다 검찰도 아직 론스타의 탈세 및 외화도피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에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공정위가 대주주 적격성 및 기업결합심사에 문제를 제기해도 계약은 무효가 될 수 있다.

결국 외환은행 재매각 과정이 2003년 매각 과정의 불법성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갈 여지가 열려있기는 하지만 그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 매각 얼마나 지연되나

하지만 매각 과정 자체는 일정 기간 지연될 것이 확실시된다.

다만 어떤 이유로 얼마나 지연될지가 문제다.

우선 정밀실사 기간이 3주일 연장됐기 때문에 최종계약 체결시기도 자연히 지연된다.

오는 5월12일께 정밀실사가 종결되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5월 중순께 최종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계약이 체결되면 금감위.금감원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및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를 받게 된다.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가 최대 4개월까지 연장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대금지급 시점은 9월 말까지 연기될 수 있다.

감사원과 검찰 수사는 현재로서는 7월 중순 정도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5월 초께 감사원 조사가 끝나면 론스타에 대한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늦어도 7월까지는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검찰 수사가 장기화되는 등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빠르면 7월, 늦으면 9월께 대금지급이 완료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 수사에서 론스타의 혐의점이 분명해지거나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면 재매각 과정이 궤도에서 완전히 탈선할 여지도 남아 있다.

◇ 매각 과정 지연 배경은

국민은행과 론스타가 매각 과정을 다소 지연시키기로 한 것은 여론의 뭇매를 피하면서 계약이 여전히 유효함을 밝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민은행은 론스타의 한국 탈출을 적어도 돕지는 않았다는 차원에서 여론의 예각을 다소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상황에서 국민은행이 빠져나올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도 이번 합의의 산물이다.

론스타는 역시 이번 합의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여론의 역풍을 피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계약이 무효가 돼도 좋다고 말할 만큼 불법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을 전달하면서 계약 과정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 한국시장을 탈출하려한다는 추측도 불식시켰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과 론스타가 약간 물러서 여론의 역풍을 피했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서 배타적 협상 권한은 여전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