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선 < 농수산물유통공사 이사 > 가끔 젊은 후배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들려주면 실감을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시래기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보리가 익기만 학수고대하던 시절이 분명히 우리에게는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쌀의 과잉생산으로 매년 수백억원의 쌀 재고 관리비가 들어가고 있다. 허기졌던 '보릿고개'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쌀 산업의 현주소는 그리 밝지 않다. 2004년 기준으로 91만4000호의 쌀 생산농가가 호당 1.1ha의 논을 경작하고 있는데,품질 경쟁력은 외국산에 비해 그리 높지 않고 가격은 국제 시세보다 3~4배 높다. 게다가 1980년대 120~130kg 수준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지난해에는 82kg까지 떨어졌으며,지난해 11월에는 수입쌀 협상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 결과 4월 초에 수입쌀이 우리 국민들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2014년까지 우리 쌀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벌기도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 쌀 산업이 개방의 한복판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일본은 자국 쌀의 '고품질화 전략'에 성공한 케이스다. '고시히카리'라는 쌀을 개발한 일본에서는 '자국 쌀=고품질 쌀'이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정착돼 가고 있으며 아직 소량이기는 하나 '고품질'이라는 브랜드 마케팅을 앞세워 대만 중국의 부유층에 높은 가격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일본 쌀 산업의 '고품질·차별화 전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쌀'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재화라는 고정관념에서만 벗어나면 쌀 시장의 '블루오션'은 얼마든지 창출되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고소득층을 겨냥한 고가의 '명품 쌀시장'이 창출될 수도 있고,개인의 기호나 건강상태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기능성 쌀시장'도 창출될 수 있다. 쌀 소비 촉진도 마찬가지다.'쌀'은 '밥'이라는 선입견에서만 벗어나면 쌀로 만든 빵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새로운 시장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제 '쌀'은 시장원리의 지배를 받는 어엿한 '상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생산자는 소비자가 원하는 최적의 상품 만들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다른 산업군에 비해 아직 경쟁력이 취약한 쌀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쌀 산업이 국민들에게는 삶의 기본 에너지를 충만하게 공급하고,농업·농촌에는 희망과 번영의 디딤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든 이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