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6일 제6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추진 방향에 대해 두 가지 큰 지침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힌데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한미 FTA 협상의 방향을 개괄적으로 밝힌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농업 분야를 비롯해 법률, 교육, 금융, 의료, 영화 등 서비스 산업의 각 분야를 거론하며 협상 과정에서 `유의하거나 고려해야 할 사항'을 조목조목 짚었다. ◇두 가지 지침 = 첫째는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때문에 (한미 FTA에) 못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고", 둘째는 "협상조건에 따라서는 FTA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으며 양보 못하는 절대 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지침은 한미 양국이 지난 2일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하자 국내 이해단체들인 영화계, 농민단체 등이 `한미 FTA 반대' 구호를 거세게 외치고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FTA를 국지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한미 FTA에 따른 이익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보호'를 강조한 셈이다. 우선 노 대통령은 한미 FTA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FTA가 가져올 전체 국가 이익을 따져봤을 때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가 가져올 이익으로 ▲대일(對日) 무역역조 및 기술의존 완화.해소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산업구조 개선 등을 통한 `세계 일류국가로의 발돋움'을 꼽고 있다. 정문수(丁文秀)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한미 FTA가 국내 산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제조업 분야는 세계 1등의 고부가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절대적 기회를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보좌관은 또한 "중소기업은 대일 의존에서 벗어나 유리한 선택이 가능해짐으로써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이는 중소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일부 국내 이해단체 및 집단에만 국한된 `작은 이익'을 위해 `더 큰 이익',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의 첫번째 지침은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함에 있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자세로 협상을 차질없이 진행해 달라는 정부에 대한 주문이자 국내 이해단체들에 대한 당부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 것을 함께 당부하고 있다. 이날 "양보 못하는 절대 조건이 있을 수 있다"는 두번째 지침이 이를 의미한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양보 못하는 절대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 보좌관은 "원론적으로 절대 양보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무엇을 특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으며, 다른 관계자도 "앞으로 계속 논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국민 컨센서스에 의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으로 판단되는 부분이 향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조건'으로 설정돼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가령 대표적 민감 품목인 쌀이 `절대 조건'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박홍수(朴弘綬) 농림장관이 지난 13일 "쌀은 반드시 제외돼야 한다. 축산과 과실류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민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더 논의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는 `원칙'이기 때문이다"고 밝힌 것도 `절대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정부는 여론 수렴을 비롯해 정부내 검토작업을 거쳐 한미 FTA 협상에서 `물러설 수 없는 선'을 점차 정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서비스 분야 =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한 두가지 큰 지침을 전달하면서 분야별 협상 추진의 방향도 제시했다. 요약하면 협상에서 양보 불가능한 일부 업종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분야에 대해 개방과 경쟁의 원칙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재경부가 중심이 돼 서비스의 분야별 개방우선순위를 정해 협상에 도움이 되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법률, 회계, 세무분야를 예로 들어 "이들 분야가 우리 기업의 국제화에 매우 긴요한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개방하면 일자리가 곧 늘어날 분야로 본다"면서 "이런 분야는 경쟁에 노출시켜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무대로 나가는 계기를 만들자"고 말했다. ◇금융 분야 = 아울러 금융업에 대해 "이미 개방이 많이 됐고 또 앞으로 더 개방이 돼야 하겠다"며 "다만 투기자본의 폐해는 우리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경계해야 할 분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 등 개방에 따른 각종 부작용은 미리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하지만 개방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교육 분야 = 노 대통령은 이어 교육부문 역시 "적어도 대학교육은 민족정체성 교육이 아니라 경쟁으로 나가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우리 자녀들이 해외유학하는 것은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밖으로 유학을 가는 숫자보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오는 숫자가 더 많아지는 것을 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교육시장의 문호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기존 인식을 재확인한 것으로, 노 대통령은 2004년부터 "교육은 산업"이라는 모토를 내건 뒤로 김진표(金振杓) 전경제부총리를 교육부총리에 기용하는 등 정부 인사와 정책에서 교육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해왔다. ◇의료 분야 = 노 대통령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의료시장에 대해서도 "국민의 공공서비스는 확실히 하되 나머지 산업적 측면은 적극적 개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전 국민이 의료에 걱정이 없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외국에 치료목적으로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의 요구로 치료받으러 나가는 것보다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는 숫자가 더 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육과 의료부문의 산업적 측면을 우리가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크린 쿼터 =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사회적 갈등 현안으로 부상한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노 대통령은 "어린 아이는 보호하되 어른되면 독립하는 것 아니냐"면서 "한국영화가 어느 수준인지 스스로 판단해 볼 때가 됐다"고 언급, 우리 영화계 스스로 국제화.개방화 추세에 발맞춰 나갈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문수 보좌관은 "영화만이 아니고 우리 서비스 부분 전체에 해당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어린이는 우리가 보호를 하지만 어른이 되면 독립하고 그것은 우리 동물의 세계에도 다 보고 그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농업 분야 = 한미 FTA 타결시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농업에 대한 특별대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FTA로 인한 농업문야 피해가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농민의 아들로 농사를 지어온 대통령으로서 임기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다짐했다. 농업 인프라가 여전히 취약하고 시장개방이 농가에 미칠 악영향이 클 것이란 점에서 협상에 있어 `분리대응'식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이를 두고 쌀이 노 대통령이 지적한 "양보 못하는 절대 조건"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김범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