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말로 '끼'라고도 하는 기(氣)는 동양철학의 독특한 존재다. 기는 천지만물을 생성하며 생명력과 활동력의 근원으로서 기 가운데 근본인 원기(元氣)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고 음기(陰氣)와 양기(陽氣) 또는 오행(五行:木火土金水)의 배합과 순환에 따라 사물은 차이가 나고 변화한다고 한다. 기는 사람의 숨, 바람, 구름 등의 공기모양으로 천지(天地)에 꽉 차 있고 인체에도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 기가 빠지면 죽음이요 죽으면 혼(魂, 넋)은 하늘로 날아(飛)가고 백(魄, 얼, 넋)은 땅으로 흩어(散)진다고 한다. 죽을 정도로 놀랐을 때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고 한다. 죽지 않을 정도로 기가 꺾이거나 막히면 '넋 나간' 사람이 되고 '얼빠진' 사람이 된다. 올 들어 한때 1,000을 넘어섰던 주가는 기세(氣勢)가 꺾여 900대로 내려앉고 말았다. 소비자기대지수는 100을 넘어섰지만 실제 경기지표의 기세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파주에 공장을 지으려던 기업인은 평당 6백만원을 호가하는 공장부지 가격에 기가 꺾여 중국으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LG필립스LCD의 공장이 들어서자 1년 새 땅값이 30배나 폭등했다니 '혼비백산'할 일이다. 많은 기업인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거나 하려 하고 있다. 이유는 한 마디로 한국에서 기업할 기분(氣分)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기업하는 자부심과 애국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높은 땅값에 기가 꺾이고, 강력한 노조에 기가 막히고, 정부의 온갖 규제에 기가 죽어 자부심도 애국심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초에 가본 중국의 곳곳에는 한국기업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민 수는 1백50만 명에 육박했고 올림픽가에 자리잡았던 코리아타운은 중심가인 윌셔가를 넘어서까지 뻗어나가 많은 빌딩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가 살아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자라는 세대들도 하향평준화와 획일화된 공교육의 실패로 미국으로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가고 있다. 이제는 말레이시아에까지 유학을 간다니 누구의 책임을 말하기 전에 참으로 '넋 나가고' '얼빠진' 교육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기가 넘쳐 나간 것이라면 좋으련만 안에서 죽은 기를 밖에 가서 펴는 것이라면 걱정이다. 아르헨티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에 버금가는 부국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노동자의 파업이 많은 개발도상국 정도의 경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얼마 전 내가 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잘 지어졌지만 우중충한 건물들, 굴러가는 것이 신기한 낡은 자동차들, 처자식까지 버스에 싣고 와서 파업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의 초췌한 모습 등 어디에나 기운(氣運)이 흐트러져 있었다. 자원이 풍부하고 사람보다 소가 많은 복 받은 땅을 갖고도 못 사는 것은 나라와 사람들 모두 기가 빠진 데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그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페론 대통령을 아직도 좋아하고, 손을 벌리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빵을 주었던 그의 부인 에비타의 묘지에는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는다니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기가 죽었으니 어찌 '넋'이 날아가고 '얼'이 흩어지지 않겠는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침체는 기업의욕의 상실이 주 요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 높은 임금, 과격한 노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차세대들이 해외로 쏟아져 유학 가는 것은 공교육의 실패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국민 다수와 노조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은 기업의욕상실과 경제침체라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은 페로니즘이 말해주고 있다. 기가 죽으면 '넋'이 나가고 '얼'이 빠져 '혼비백산'하게 된다. 우리라고 기가 꺾이고 죽는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과 달라지겠는가. 바깥에서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기업가들과 차세대들 모두 기를 펴고 열심히 투자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간단한 제언 하나를 해 본다. 정부도 기업도 노조도 교육도 기가 살아 있는 나라가 하는 대로 하고 그들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