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매출이 60% 가량 늘어나는 등 예상외 호조로 창사이래 최대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삼성전자) "외환위기 때도 140억원 안팎을 유지했던 매출이 전체적인 판매량 감소와 제살깎기 경쟁에 따른 단가하락(30만∼40만원→15만원)으로 50억원으로 급감해 최악의해였다"(피혁의류업체 T사) 올 한해는 기업들이 업종에 따라 희비가 다른 어느해보다 극명하게 엇갈리며 '양극화'가 최대의 화두가 됐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으로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면서 수출중심의 몇몇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지만 내수에 치중해온많은 중소기업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기업들이 내수부진의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으면서 달마다 신기록 행진을 이어져연간 수출총액이 2천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내수는 민간소비감소(-0.8%)와 경제심리 불안 등이 겹치면서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해 수출로 내수부진을 만회하지 못한 기업들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최대의 목표가 됐다. 전자업계는 올해 수출 급성장을 주도하며 분기마다 최대실적을 경신하는 호황을누렸으며, 자동차업계도 내수 판매가 110만여대로 작년대비 16.5%나 감소하는 극심한 내수부진에 시달렸지만 해외시장에 230만대를 수출하며 작년대비 28% 성장률로 내수부진을 만회해 그런대로 수익성을 유지했다. 철강업계와 정유업계는 다른 업종에는 악재가 된 원자재난과 고유가에 힘입어대부분의 업체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호황을 구가했다. 반면 섬유업계에서는 내수침체와 원자재가격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중견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대기업들도 구조조정에 착수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통업체들은 최장의 세일공세를 펴며 안간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닫혀진 지갑을 열지는 못했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부동산가격 안정화대책으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침체를 면치못하고 있으나 최근 구체화되고 있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종합투자계획'(뉴딜정책)에 기대를 걸고있다. 내수부진,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급락, 구인난 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있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최근 조사에서는 10곳 중 8곳 이상(82.9%)이 현 경기상황을 '위기'라고 답하기도 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의 공장 이전은 올해도 이어져 산업공동화에 대한 경고가지속적으로 제기됐으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대형 노사분규를 겪었던 예년과 달리 노사문제에 있어서는비교적 평온한 한 해를 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G칼텍스정유, 전국공무원노조등이 국민여론의 '뭇매'를 맞고 실패로 끝남으로써 무리한 파업은 안된다는 인식이확산됐으나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 불씨로 남아있는 상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들은 '기업투자 활성화', '기업하기좋은 환경 조성' 등이 경제살리기의 핵심 키워드가 되면서 이를 명분으로 전례없이많은 정책요구를 쏟아냈다. 이 중 출자총액제한 연내철회 등의 요구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부 원안대로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끝내 무산됐지만 전경련이 제안한 기업도시특별법이 법으로제정되고, '덩어리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총리실 산하에 대기업 대표들이 참여하는규제개혁기획단이 가동 중이다. 또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증권집단소송법상의 과거분식 적용제외 요구도 정치권과 정부내에서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해법을 모색 중인 것도 재계가 올린 성과 목록에 올라있다. 산업계에서는 올해 내수침체를 만회하며 경제 버팀목 역할을 한 수출이 내년에는 환율급락, 반도체 가격 하락세를 비롯한 시장여건 악화 등을 들어 그리 밝지 못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연말들어 심화된 환율급락은 수출로 지탱해온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최대 요인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은 환율급변으로 내년도 사업계획을 한 달 이상 늦추며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세자릿 수 환율시대에 대비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지난 2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이 한자릿수 증가율로 급락하고 내수회복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경제가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각종 조사에 우리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불확실성'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소비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기자 eomn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