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묻히게 해 주세요" 80년 5월 당시 목숨을 걸고 광주를 취재했던 파란 눈의 외국 기자가 유언처럼남긴 말이다. 당시 광주를 영상으로 제일먼저 외국에 알렸던 독일 제1공영방송 ARD-NDR의 전일본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67.Juergen Hinzpeter)씨. 현재 그의 생명이 위독하다. 6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독일 북부의 휴양도시인 라체부르크에 거주하는 힌츠페터씨가 지난 3일 집에서 쓰러져 현재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중이란 사실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재단에 알려왔다. 그런데 의식이 불분명한 와중에 그가 가족에게 연방 내뱉고 있는 유언은 다름아닌 "죽으면 광주에 나를 묻어달라"는 것. 이 소식을 전해들은 5.18기념재단은 그의 유지에 따라 그가 사망할 경우 유해를 5.18 묘지에 안장하기로 하고 지난 4일 재단 관계자와 유족회장 등이 망월동 구 묘지일대에 적당한 위치를 물색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묘지관리를 맡고 있는 광주시측은 힌츠페터씨의 5.18묘지 안장에 대해 `선례가 없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광주도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과 광주를 잊지 못하는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5ㆍ18민중항쟁 당시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와 목숨을 걸고 광주 현장을 취재했으며 그가 촬영한 영상 자료는 군부독재의 폭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37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평범한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였으나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 1968년 NDR의 카메라맨이 됐고 이후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지역의 뉴스현장을 19년동안 누비다 78년 일본 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박정희정권 치하의 사건들을 기록해 나갔다. 그리고 80년 5월 19일. 그는 광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바로 한국으로 날아와 우여곡절 끝에 학살의 현장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의 필름은 독일 전역에 방송됐고 그해 9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판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45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에게 개인적으로는 큰 아픔을 안겨줬다. 그는 80년 광주항쟁 취재 이후 전두환 정권의 폭압상을 널리 알려오다가 86년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95년에 기자직에서 은퇴한 그는 광주항쟁에 관한 회고록 집필을 준비중이었다. 지난 2000년 5ㆍ18 20주년 행사와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해외민주인사 한마당'에 초청돼 한국을 방문한 그는 올때마다 "당시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민주화가 이뤄졌음을 절대로 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불의에 맞서 진실을 알리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며 치열한 기자정신을 보여준 그는 지난해 제2회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던 치열한 기자정신이 국민의 양심을 깨워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당시의 수상 결정 이유가 올해 5.18 24주년을 맞는 광주시민들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