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에 언제 다시 만날꼬..." "통일되면 다시 만나요.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요." 제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상봉 1진 남측 방문단 100명은 31일 오전 10시부터 김정숙휴양소 앞마당에서 1시간 동안 북측 가족들과 작별상봉을 갖고 2박3일간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남긴 채 기약없는 작별을 했다. 독일에서 노무관으로 근무하던 중 귀환 1개월여를 앞두고 사라진 유성근(71)씨의 딸 경희(41)씨는 "돌아가시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고 특히 외가에 엄마가 편히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해주세요. "라며 작은 아버지 종근(62)씨에게 말했다. 성근씨는 "어쨌든 건강에 제일 조심해야 해. 형 말이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무 흥분하지 말고 건강 조심해야 해. 시대가 달라졌으니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하자 종근씨는 "형하고 같이 살 수 없겠느냐"며 흐느꼈다. 상봉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던 종근씨는 "손 한 번만 다시 잡아보자"며 형 성근씨에게 달려가 안고 다시 울먹이기도 했다. 지난 87년 1월 15일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이었던 아들 양용식(47)씨를 만난 양태형(77)씨는 "내가 살아서 한번만이라도 더 봐야 할 텐데"라며 꼬깃꼬깃하게 접힌 남은 달러를 평애양 손에 쥐여주면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용돈을 건네기도 했다. 양태형 할아버지는 "평화통일을 빨리 해야 하고 남북이 서로 양보해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며 "살아있는 동안 면회소가 설치되고 단 며칠이라도 같이 잘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득(66)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국군포로 형 종옥씨 대신 상봉에 참가한 형수 문영숙(66)씨는 "다시 만날 수 있겠죠. 통일이 빨리 되어야 할텐데"라고 말하자 이씨는 "남측에서도 노력하고 있으니 그날이 올 겁니다"라고 형수를 달랬다. 종득씨는 "형이 북측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내왔는데 의문이다 해소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주고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이번 방문단의 최고령자인 김옥준(96) 할머니는 외손자 김진명(38)씨와 전날 삼일포 참관상봉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동반가족으로 상봉에 함께 한 아들 조춘묵(67)씨는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착잡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섭섭하다"고 말하자 조카 김진명씨가 "다시 통일이 되면 언제든지 만나는 거죠"라며 외삼촌의 손을 부여잡았다. 정상호 할아버지는 남측 상봉단이 모두 버스에 오른 뒤 다시 내려 남측 안내원의 손에 이끌려 버스 앞에서 북측 상봉단에 손을 흔들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김희준 할머니는 버스에 오른 뒤 남측 기자들에게 북측 조카 최찬옥씨를 찾아 "여기를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북측 김경숙(46)씨는 거동이 불편한 남측의 고모 김상례(71)씨를 버스 앞까지 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경숙씨는 "북과 남이 함께 되는 날을 기원하며 고모를 여기까지 업고 나왔다"고 말하기도. 이정근 할아버지는 한 살 때 헤어진 아들을 다시 두고 떠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차량 입구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흐느꼈다. 정승호 할아버지는 딸 정윤숙(64)씨에게 전날 밤새워 쓴 2쪽짜리 편지를 건네며"내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꺼내 읽기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숙아 보고싶다"로 끝을 맺은 편지에는 "그동안 미안하고 죄송하고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받지 못한다"며 "서신교환, 전화연락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그것도 안되니 답답하다"고 할아버지의 심정을 담아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남북 양측 이산가족들은 상봉 내내 전날 함께 찍은 사진을 전달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도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 방문단 100명은 10시 김정숙휴양소를 떠나 해금강호텔로 돌아와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낮 1시 금강산을 떠나 속초 한화콘도로 귀환한다.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