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구려사(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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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 당황스럽기 마련인데 고구려사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누가 봐도 고구려는 엄연히 우리의 역사인데도 중국은 자기네 변방국이었다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학술연구와 논리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논쟁이 될성 싶지 않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6월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를 통해 "고구려족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였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한마디로 고구려가 자신들의 속국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주장이 역사학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단순한 떠보기 식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해 2월부터 5년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국책사업을 진행중인데 이 사업은 고구려가 주된 관심사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중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역사는 모두 중국역사라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이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정치적 목적이라는 인상이 짙다.
2001년 북한이 유네스코(UNESCO)에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하자 이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동북공정을 성안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중국측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가 뒤늦게 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우리 역사 뿌리 찾기'운동이 그나마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정도다.
상고사를 소홀히 다루는 교육을 질타하고 희박한 역사의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당장 시급한 것은 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고구려 고분벽화 세계문화지정심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만일 중국의 고분벽화만 지정된다면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 확인되는 셈인데 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학계는 물론 북한 모두가 나서 이 사안을 지체 없이 다뤄야 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