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朴昇) 한은총재 내정자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자못 크다. 한은 출신으로 대학교수,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건설부장관 등을 지낸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중량급 인사라는 점에서 우선 통화신용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총재로서 갖춰야 할 여러가지 강점을 지녔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은행의 신임 총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큰 기대를 갖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다 경제상황으로 보아 어느 때보다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과 기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해왔고,따라서 중앙은행의 최고 정책목표라 할 수 있는 화폐가치의 안정,즉 물가 문제는 그다지 큰 이슈로 제기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경기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경기국면이 바뀌고 있고,물가불안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 상승국면이 분명해진 것도 아닌 전환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통화신용정책의 적절한 방향 설정이 박 총재가 결정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구체적으로는 당장 4월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인상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돼 있다. 우리는 누차 금리인상에 신중을 기해 주도록 주문한 바 있다. 아직도 투자와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인상했다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어버리거나,기업채산성 악화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금융비용 부담이 적지않은 우리 기업의 현실도 충분히 감안돼야 한다. 중앙은행의 위상강화와 그에 합당한 역할 재정립도 신임총재가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실히 발휘해야 한다는게 그 핵심이다.이는 침체에 빠진 한은 조직의 활성화와도 직결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제적 통화정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첩경이기도 하다. 물론 박 총재의 말대로 정부와 대립이 아닌 견제와 균형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앙은행총재의 권위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뚜렷한 소신으로 정책수립에 좀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게 그 해법이다. 한은총재의 말 한마디가 자금흐름을 바꿀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수단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임 박 총재가 중앙은행의 상징성에 걸맞은 실질적 위상강화를 이뤄내 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