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만점에 평점 4.0' 지난 2월말 한양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이순(耳順)의 전직 CEO(최고경영자)가 받은 성적표다. 주인공은 지난 93년부터 96년까지 SK케미칼 사장을 역임한 김준웅씨(60). 김씨는 지난 2년6개월동안 15과목을 수강해 모두 A학점을 받았다. 밤 새워 책을 통째로 외우고 초등학교 수학책을 뒤적이면서 일궈낸 성과다. 한양대 손태원 교수는 "너무 열심히 해서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큰 자극을 받았다"며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지난 96년 말 SK그룹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된 SK케미칼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인물. 그는 "남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무려 퇴직금에 60개월치 월급을 더 주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받았다. 전 직원의 30%에 달하는 1천여명이 자발적으로 명퇴를 신청했고 SK케미칼은 별 후유증 없이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확신이 설 무렵 김 전 사장은 당시 최종현 그룹 회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표를 냈다. 많은 직원들을 내보낸 장본인이 편히 그대로 근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김씨는 유학을 준비했다. "새 일을 하기 전에 당연히 재충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기업에 있으면서 '사람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인사.관리를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미국 조지타운대 MBA 과정을 염두에 두고 지난 97년 3월 연세대 어학당에 등록했다. 처음 시작한 단계는 '레벨 3'. 3개월마다 1단계씩, 최종 '레벨 7'까지 가는 동안 단 한 번도 탈락하지 않았다. 영어교재를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다. 당시 미국인 강사는 "당신의 실력은 최고는 아니지만 제일 열심히 한다"고 칭찬했다. 어학과정을 마친 김씨는 당초 작심했던 대로 미국으로 가지 않고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환위기로 달러를 써가면서 유학을 가는데 회의가 들었기 때문. "첫 수업인 경영통계 시간이었습니다. 담당 교수가 58세의 나이로는 공부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에 자극받아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수학책부터 다시 파고드는 식으로 기초수학 실력을 다진 끝에 무난히 경영통계 과정을 통과했다. 부인 유영숙씨는 "처음에는 나이 들어 쓸데없는 짓 한다고 말렸다"며 "요즈음 그이가 제일 체질에 맞는 직업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3년마다 한 번씩 한 분야의 학문을 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3년간 중국어 정복에 나설까 합니다. 21세기는 중국과 함께 가야 성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 비즈니스에 뜻을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열심히 재충전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 승부를 걸 새 도전 기회는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