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사건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제창했던 '주식 사주기 운동'을 진풍경이었다고 한다면,재경부가 원금 보장을 약속하는 주식관련 상품을 내놓은 것은 '갈수록 태산'이라 할 만하다. 실적배당 상품조차 이익과 손실은 투자자의 몫인 터에 주식 투자에 세금을 퍼부어 손실을 보전하겠다니 당국자들로서는 하지 못할 일도 없다. 선거철이 다가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정치적 희화의 하나인지조차 모르겠다. 물론 '주식'에 대한 시중의 오해와 곡해가 하나 둘이 아닐테다. 대중의 오해는 그렇다 하더라도 당국자의 곡해에까지 이르면 결과는 심각해진다. 주가는 경제의 성적표라고 한다. 성적표에 기록된 점수를 고쳐놓는다고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종종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주가가 올라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주가가 올라가는 조건은 별개 문제다. 액면을 5백원에서 5천원으로 고쳐놓는다고 주가가 열배씩 오르는 것은 아니다.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가수준이 낮다"는 말을 반복해 듣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주가는 기업 실적이나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등 종합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나의 잣대로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때로 매우 위험하다. 경영의 투명성이 합리적 주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경영이 투명하다고 해서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종합주가지수는 아직도 500선을 맴돌고 있지만 기업경영이 더욱 불투명하던 80년대말에 이미 1,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주가다. 기업의 수익력이야말로 주가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애써 도외시한 채 굳이 다른 방법으로 주가상승을 기대한다면 산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불과 3∼4%의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고위 당국자들의 주장을 반복해 들어야 하는 것도 공해에 가깝다. 주식시장은 자본력에 한계를 느끼는 기업가로 하여금 거대 자본을 동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장경제의 핵심적인 제도다. 기업가의 경영권을 보유주식 비율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류(流)의 생각은 자본시장의 기능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발상이다. 자본시장이란 소량의 지분으로 거액의 의제(擬制)자본을 창출하는 곳이다. 이를 잘못이라고 한다면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이 발달하고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대주주 지분이 낮아지는 것은 선진국에서 보는 그대로다. 만일 기업을 지배하는 조건으로 대주주에게 절대 지분을 요구한다면 기업의 성장,경제의 발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주주는 소유주식 비율 만큼을 지배하고 나머지는 소액주주에게 돌리라는 것은 기업을 공공의 소유로 돌리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시장경제 논리에 기초한 듯하지만 실은 사회주의적 발상이요, 말장난이다. 소액주주 권리를 외치는 계몽주의 운동도 때론 비슷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많다. 증권 투자자는 경영자 또는 대주주의 투자계획에 대해 표결할 권리를 갖지만 이 표결이란 1차적으로 주식을 사거나 팔아버리는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또 바로 그것을 위해 증권시장이 존재한다. 기업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반대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모으는 행위는 차라리 골계(滑稽)에 가깝다. 이런 오해들이 거듭 되풀이된 끝에 정부가 내놓은 것이 손실보장 상품이다. 차라리 정부에서 모든 기업을 직접 소유하고 주가는 언제나 적정한 수준까지 올려놓은 다음 1년에 한번씩 전국민에게 고율의 배당을 주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면 굳이 투자 손실을 보상해주지 않아도 될 터이므로….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