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로등 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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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 비탈길/벚꽃이 필 때면/나는 아팠다/견디기 위해 도취했다/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어떤 죄악도 아름다워/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후략)'
시인 황지우의 '수은등 아래 벚꽃'이 아니더라도 가로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가로등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건 1900년 4월 10일.
서울 종로의 전차 정류장과 매표소 3곳에 반사갓을 씌운 백열등이 켜졌다.
알전구와 형광등이 주를 이루던 서울의 가로등은 60년대초 수은등으로 교체됐다가 90년대 중반부터 안개 속에서도 환한 황색 나트륨등이나 메탈할로이드등으로 바뀌었다.
66년 4천8백여개에 불과하던 가로등 수도 12만4천여개로 늘었다.
평소엔 꺼졌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켜지는 센서형이 있는가 하면 양재천 변 가로등처럼 고장나면 담당공무원을 자동호출하는 첨단형도 있다.
시민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설치된 가로등에서 흘러나온 전기때문에 멀쩡히 길가던 사람,그것도 한두명이 아니고 2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데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가로등 절반 이상에 누전차단기가 없거나 있어도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그 구간의 등 몇십개가 모두 꺼진다는 것 때문에 아예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는 데는 아연해질 따름이다.
교통신호등에 누전 차단장치가 제대로 없는 것 또한 누전시 전원이 꺼지면 신호등이 작동 안돼 난리가 난다며 일부러 설치하지 않아서라는 데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울시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밤거리를 만든다며 지난해부터 주요 도로의 가로등을 교체하고 조도를 높이는 등 도로조명 개선작업을 해왔다.
폼도 좋지만 중요한 건 시민의 안전이다.
가로등의 모양 등 눈에 보이는 외관을 바꾸는 데만 신경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낡은 선로를 교체하고 누전차단장치와 접지시설을 갖추는 데 힘썼다면 애꿎은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오는 날 시내를 다니자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마당에 근사한 야경이 다 무슨 소용인가.